열 명의 나병 환자

조회 수 4066 추천 수 0 2010.08.20 14:02:18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의 한가운데로 지나가시니라. 그분께서 어떤 마을로 들어가시매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을 만나 멀찍이 떨어져 서서 목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님이여,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거늘 그분께서 그들을 보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시니 그들이 가다가 정결하게 되니라.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돌아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의 발 앞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그분께 감사를 드렸는데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더라. 예수님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정결하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그 아홉 사람은 어디 있느냐? 이 타국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를 찾을 수 없도다,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네 길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온전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눅17:11~19)

 

이미 나병이 어떠한 병인지에 관하여는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살펴본 바 있습니다. 여기에서 열 명의 나병 환자를 등장 시킨 것은 바로 예수님을 만난 자들이 그분을 통해 은혜를 입은 후 어떠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지에 관하여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나병은 그 자체로 재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또한 이미 사망 선고를 받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재앙 속에 있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 명의 나병 환자는 바로 사망을 앞두고 있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동일한 시간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목소리를 높이며 주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나병이 치유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은혜가 매우 공평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공의로우신분입니다. 어떤 이들은 날 때부터 특정한 사람에게 구원이 정해져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민족과 인종을 구분하여 주님의 긍휼이 다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편견일 뿐입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며, 그들을 동일하게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열 명의 나병 환자를 대하시는 모습은 바로 주님의 마음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긍휼을 구하는 열 명의 나병 환자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사장에게 보낸 이유는 나병에 대한 판정 여부를 제사장이 하도록 율법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레13:1-59). 그러나 열 명의 나병 환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제사장에게 가기도 전에 병이 치유된 것을 알았습니다. 아마도 아홉 명의 나병 환자는 자신이 더 이상 나병 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빨리 알리기 위해서 제사장에게 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명의 나병 환자에게는 제사장에게 검증을 받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유대인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으며, 제사장도 그를 반겨줄 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발길을 돌려 예수님께로 왔고, 그분께 감사함으로서 영광을 돌리는 길을 택했습니다.

 

아홉 명의 나병 환자가 모두 유대인이라는 증거를 보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자신의 병이 낳기 만을 고대하였고, 그들의 병이 치유되는 순간 각기 제 길로 떠나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신의 삶이 형통하기만을 고대하고, 그들의 문제들이 해결되었을 때 더 이상 주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생을 살면서 힘겨운 시간을 만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주님을 찾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자신의 눈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할 하나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나병환자중 한 사람의 사마리아 사람은 주님을 다시 찾아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의 발 앞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그분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유대인을 대변하는 아홉 명의 나병환자는 율법을 대신하는 것이고, 타국인(이방인)으로 여겨졌던 사마리아 사람은 복음을 대신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즉 이 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버리고 타국인(이방인)을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치게 복음을 확대 해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홉 명의 환자가 모두 유대인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으며, 또한 주님께서 그들을 찾으시기는 했지만 그들을 버렸다고 선언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홉 명의 나병 환자가 모두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주님은 그들을 찾으시고, 또한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주님은 유대인이나 타국인(이방인) 모두가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한 사람의 감사가 돋보이는 장면이지만 “그 아홉 사람은 어디 있느냐?”는 주님의 질문에 대하여 더욱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품으로 돌아오기를 고대하는 예수님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예수님의 마음(렘50:6,마10:6,마15:24,눅15:4)을 생각하면 그분의 간절함을 옅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긍휼을 베푸신 후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했지만 그들은 더 이상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앞에 놓인 자유로운 삶을 누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뿐입니다.

 

이 기적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가르침은 감사를 드리러 온 나병 환자는 한 사람뿐이었다는 점입니다. 아홉 명은 각기 제 길로 갔지만 사마리아 사람이었던 이 한 명의 나병 환자는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와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단 한 명 뿐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왜냐하면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진정성 있게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현대 사회는 회중의 여론에 의해 지배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중심리에 의해 남들이 하는 것은 대부분 따라 해야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 사마리아 사람은 아홉 명의 움직임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정직하게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성경 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그는 바알과 아세라 850명과 대적하기 위해서 혼자 서 있었습니다(왕상18:19-40). 많은 사람들이 바알과 아세라 대언자(선지자)를 지지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외롭게 서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그들도 역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겠다고 선언한 10명의 각 자파의 대표들과는 달리 소신 있게 행동했습니다. 특히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은 오직 주님만을 섬기겠노라는 다짐을 하는 모습(수24:15)을 통하여 그가 다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가장 명확하게 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지금 사람들을 설득하느냐, 하나님을 설득하느냐? 혹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리라.” (갈1:10)고 말한 바울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도 역시 수많은 유혹이 있었고, 힘겨운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외로운 싸움을 지속했던 자입니다.

 

과연 누가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어떠한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정직한 자세로 주님께 다가가는 자입니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더라도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그 길로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칭찬 받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스스로 힘든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약속하시기를 “우리가 잘 행하는 가운데 지치지 말지니 우리가 기진하지 아니하면 정하신 때에 거두리라.”(갈6:9)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약속을 다라 다가 올 세상에서의 영광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정직하게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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