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두 사람(마9:27-34)

조회 수 3874 추천 수 0 2010.07.17 11:25:18

예수님의 기적(17) 눈 먼 두 사람(마9:27-34)

 

예수님께서 거기서 떠나가실 때에 눈먼 두 사람이 그분을 따르며 소리를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더라. 그분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그 눈먼 사람들이 그분께로 나아오더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느냐? 하시니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매 이에 그분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그 일이 너희에게 이루어질지어다, 하시니 그들의 눈이 열리거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엄히 명하여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그것을 알리지 말라, 하시더라. 그러나 그들이 떠나가서 그분의 명성을 그 온 지역에 널리 퍼뜨리니라. 그들이 나갈 때에, 보라, 그들이 마귀 들려 말 못하는 자를 그분께 데려오매 마귀가 내쫓기고 말 못하는 자가 말을 하거늘 무리가 놀라며 이르되, 이스라엘에서 결코 그 일을 이런 식으로 본 적이 없다, 하나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마귀들의 통치자를 통해 마귀들을 내쫓는다, 하더라. 예수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들에서 가르치시고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모든 질환과 모든 질병을 고쳐 주시니라. (마9:27~35)

 

예수님께서 눈 먼 사람을 고쳐주시는 장면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동일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각기 다른 사람들입니다. “나면서부터 소경인자”(요9:1-41)와 “바디매오”(마20:29-34,막10:46-52,눅18:35-43), 그리고 한 눈 먼 사람(막9:22-26)은 모두 소경이었지만 예수님의 긍휼을 입었던 다른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이 눈을 뜨게 하시는 장면을 통하여 이미 영적으로 소경 된 자들이 어떻게 눈을 뜨게 되는지를 소개하시려는 의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주님께 다가가는 소경들을 통하여 은혜를 얻게 되고, 구원에 이르는 길들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을 통하여 소개되고 있는 여기 눈먼 두 사람은 예수님의 뒤를 따르며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이 말은 곧 그들에게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그들에게 주님의 도우심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들은 주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자신의 처지가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눈이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인생을 끝내게 된다는 것은 너무도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그들은 매우 절박한 상황에서 예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이르기 위한 가장 첫 번째 조건이 무엇일까요? 많은 복음 전도자들은 대부분 복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듣는 자들에게 한 가지 조건이 이미 완성 되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자신의 존재를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복음, 즉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한 구원하심이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그들은 복음의 필요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위험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설령 그것이 다가올지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더욱 결정적인 이유는 복음이 그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눈앞에 놓인 일들은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그들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자들입니다.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내일 일도 알지 못하는 영적 소경들이며, 불확실한 미래를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지옥으로 던져지게 될 자들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비참한 상태에 놓인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했을 때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될 것이며, 결국에는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또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눈먼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으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육신의 눈은 열려있지만 영적으로 소경이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토록 구원을 얻을 자들은 먼저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즉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눈먼 두 사람은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에 대한 사실과 또한 그분의 능력에 대하여 분명한 확신 속에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너희는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느냐?”라는 질문에 대하여 “[주]여, 그러하오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너희 믿음대로 그 일이 너희에게 이루어질지어다”라고 말씀 하실 때에 그들의 눈이 열리게 됩니다.

 

어찌 보면 주님의 긍휼은 매우 조건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편에서 바라볼 때에는 매우 조건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편에서 볼 때는 무조건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는 은혜를 선물로 사람들에게 건네주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거절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곧 그분이 주시는 은혜에 대하여 받아들이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에게 선물을 받게 될 때에 그것의 정체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선물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유익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뇌물로 둔갑하기도 하고, 때로는 올무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에 선물의 가치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는 자가 어떠한 마음인지를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사랑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대가를 바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본래 하나님의 자녀들이었던 자들이었다가 잃어버린 자녀들을 찾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이러한 일들을 알기 원하시고, 복음을 듣는 자들이 스스로 깨달아 알고 돌아오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즉 주님이 주시는 선물의 동기는 그 자체가 순수할 뿐 아니라 사랑으로부터 온 것임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바로 은혜의 때이며,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일이 없게 된다면 우리는 영원히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옥에 던져지게 될 것이며, 마지막에는 불 호수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눈먼 두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구걸을 하며, 사람들의 도움을 구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세상에 기대어 사는 자신을 보면서 한 숨을 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을 바꾸어 줄만한 놀라운 기회가 그들 앞에 다가왔을 때 그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분을 소리 놓여 부르고 있었고, 예수님은 그들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예수님을 만날 기회가 언제나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는 주님을 가까이 두고도 영접하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들을 기회조차 얻지 못합니다. 전하는 이들도 부지런히 다녀야 하겠지만 현재 우리가 복음을 듣고 있다면 이러한 기회들이 언제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마음으로 영접하여 구원에 이르는 지혜로운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7 마귀 들린 아이를 고치심(마17:14-20) 이진천 2010-11-20
46 가나안 여자의 마귀 들린 어린 딸(마15:21-28) 이진천 2010-11-12
45 마귀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자(마12:22~30) [1] 이진천 2010-11-02
44 마귀 들려 말 못하는 자(마9:32-34) [1] 이진천 2010-10-30
43 마귀 들려 무덤 사이에 있던 두 사람(마8:28~34) 이진천 2010-10-21
» 눈 먼 두 사람(마9:27-34) 이진천 2010-07-17
41 겨자씨 비유(마태복음13:31-32) 이진천 2010-06-07
40 곡식과 가라지 비유(마태복음13:24-30) [1] 이진천 2010-06-07
39 씨 뿌리는 자(마태복음13:3-9) 이진천 2010-06-07
38 빚진 자(마태복음18:23-35) 이진천 2010-06-07
37 반석위에 지은 집(마태복음7:24-27) [134] 이진천 2010-06-07
36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면(마15:14) [1] 이진천 2010-06-07
35 등잔대 위의 등잔불(마태복음5:15,16) [1] 이진천 2010-06-07
34 더 나은 것(마태복음5:20) [1] 이진천 2010-06-07
33 부활하신 예수님(마태복음 28:1-20) [1] 이진천 2010-06-07
32 성숙한 신앙으로 가는 길 (마태복음 26:69-75) [1] 이진천 2010-06-07
31 예수님을 아는 성도(마태복음 26:47-75) [1] 이진천 2010-06-07
30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1-75) 이진천 2010-06-07
29 현혹하는 세대(마 23:15) [1] 이진천 2010-06-07
28 외식하는 자들을 책망하신 예수님(마태복음 23:1-39) [2] 이진천 2010-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