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기도-어떻게 기도하는가?

조회 수 2790 추천 수 0 2010.06.30 10:26:19

 

기도에 특별한 형식을 둔다는 것 자체가 큰 모순이라는 점은 누차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기도를 통해서 그의 간절한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일상적인 기도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반드시 주님의 응답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그 일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보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주님으로부터 응답을 얻기 위해 동원했던 방법들을 살펴봅시다.

 

1. 그는 먼저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5-7).

 

대부분의 자녀들이 부모 앞에 자신의 어려운 문제들을 부탁해야할 때 자신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청하는 경우들을 봅니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이 부모에 대하여 효도하지 못함을 고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도와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는 느헤미야의 기도를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구할 자격이 없는 상태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주님 앞에 제대로 행하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자신들의 범죄에 대하여 말하면서 “주를 매우 악하게 대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대하여 악한 일을 행했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기는 것도 부족해서 주의 대언자(선지자)들을 죽이고 핍박하였으며, 결국에는 하나님이 없는 백성으로 살아갔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였고, 이제는 회복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회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과거를 돌아 볼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느헤미야는 과거의 일들을 돌아보면서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처럼 범죄 할 수밖에 없었던 직접적인 원인을 든다면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명령과 법도를 지키지 않았던 데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느헤미야의 고백이었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생애를 살지 못한다면 결국 범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는 것을 봅니다. 이 말의 의미는 결국 불순종이 범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간절한 기도를 필요로 한다면 먼저 자신이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의 말씀, 즉 명령과 법도를 따라 살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8-10).

 

느헤미야의 기도는 결코 자신의 생각에 의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 부르짖으며, 때로는 금식까지 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과는 매우 비교가 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주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인용하며, 간청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주님의 약속을 보십시오.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민족들 가운데로 널리 흩을 것이요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내게로 돌아와 내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너희 중에서 하늘 맨 끝 지역에까지 쫓겨 난 자가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으로 데려오리라”(7,8) 이 말씀은 이미 모세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신28:64,30:1-4). 그는 이 약속의 말씀을 근거로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가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무속신앙, 혹은 기복신앙인들이 기도하는 것과는 분명히 구별된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슴을 근거로 기도가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기도하고 있다면 그것은 마차 철부지 어린아이가 부모의 사정도 모른 채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사달라고 때를 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는 반드시 우리에게 응답해 주실 분의 뜻과 명령을 알고 그 말씀을 근거로 기도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3. 주님께 간청하고 있습니다(11).

 

그는 간청을 함에 있어서도 매우 합리적인 제안을 합니다. 그것은 무조건 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도와 주님의 이름을 두려워하기 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두려워 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마음이 있는 자를 말하는 것이며, 결코 주 앞에서 범죄 하지 않을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응답을 기대하면서 신실한 삶을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의 응답을 기대하면서도 주 앞에 신실하지 못한 삶을 산다면 주님의 응답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오히려 그를 교만하게 만들 것이며, 주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신실한 삶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자들에게 기도가 응답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방종할 것을 알면서도 귀한 것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만일 맡긴다 할지라도 다짐을 받은 후에나 줄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의 결심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과연 기도할 때에 얼마나 신실한 삶을 살기 위해 다짐하고 있습니까?

 

느헤미야가 간청하면서 말하고 있는 또 하나의 합리적인 제안은 사람들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기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것이 느헤미야 자신을 위한 것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주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전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하는 일 위에 주님께서 함께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느헤미야의 제안은 매우 적극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제안이 결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위해 일을 하고자 했으며,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만들기 위해 힘썼던 자입니다. 그의 이러한 마음이 그의 기도에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기도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우리는 기도를 함에 있어서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를 함으로서 응답받을 수 있는 효과적인 기도의 생활이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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