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보내진 것입니다(1:4). 그 교회들은 분명히 특별한 교회들이었습니다. 동일한 시대에 존재하고 있는 교회들이었지만 너무도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칭찬을 받은 교회들도 있었으며, 책망만을 받은 교회들도 있었고, 매우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교회들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오늘날의 교회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모든 교회 안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계실 것입니다. 더구나 교회는 주님의 소유이므로 결코 변질이 되거나 말씀에서 벗어나는 일들을 용납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교회를 지키시기를 원하시고 계시며, 모든 악한 것으로부터 떠날 수 있도록 가르치시고, 때로는 책망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일곱교회를 통해서 보여주고 계시는 하나님의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교회들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시대적인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령 오늘날과 같은 시대를 "라오디게아"교회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라오디게아는 그 말의 뜻이 "민중의 정의"혹은 "시민의 권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바와 같이 20세기부터 왕권시대가 무너지고 서서히 민주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더불어서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가 하나님 중심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 사람을 중심으로 세워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바로 이 시대의 교회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단 일곱 교회의 모습은 각 시대만을 대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교회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배도아 배교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일곱 교회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대부분의 교회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곱 교회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모든 시대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교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과연 성경적으로 문제가 없습니까?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 대하여 책망할 만한 것이 없는 교회입니까? 우리를 더욱 흥분시키는 것은 서머나와 필라델피아 교회와 같이 오직 주님의 격려와 칭찬이 있는 교회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완벽한 교회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완벽한 교회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에는 주님을 위해 헌신된 자들이 모여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작은 능력이라도 오직 주님의 일을 위해 힘쓰는 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결코 연구를 위해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더욱 온전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욱 주님께 소망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더욱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작은 능력이라도 주님께 더욱 헌신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 드려야만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말씀을 묵상하는 동안 반드시 능력 있는 삶을 살도록 해 주실 것이며,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갈 수 있도록 도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