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조회 수 3841 추천 수 0 2010.06.05 11:56:25

성경적인 교회의 조건[3]

사랑

 

그런즉 이제 믿음(faith) 소망(hope) 사랑(love)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13:13)

 

오늘날 교회관을 세워 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음에 관한 것들과 소망에 대한 것들을 말할 것입니다. 믿음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교회가 불러내어진 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서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자들이 모인 곳이므로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언제나 세상으로부터 핍박의 대상이므로 소망이 없이 주님의 교회를 지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까닭에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장차 올 세상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더불어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이지 않고 주님의 교회의 지체로서 충성스러운 생애를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교회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초대교회로부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져 온 것이지만 사탄의 공격을 가장 많이 받아 온 것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형제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이념과 철학으로 발전시키면서 수많은 희생자들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으며, 오늘날에는 오히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분열상을 보이면서 서로 대립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많이 오해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며,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1. 사랑으로 시작된 교회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2:44-47)

 

초대교회는 물질에 대한 소유개념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였고,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했으며, 자기 소유와 재산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대로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날마다 모이며,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며 떡을 나누면서 한 마음으로 즐겁게 자기들의 음식을 먹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이를 사상, 철학, 이데올로기로화 시키는 이론을 만들었고, 결국에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주님의 교회를 파괴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들이대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들을 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이 같은 일들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가장 중요한 자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성경 안에 있는 진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행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서 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보겠다고 했기 때문에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초대교회가 이토록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까요? 그 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무리들이었고, 또한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자신의 물건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한 형제와 자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은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후에는 가장 중요한 교훈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사랑(love)과 형제사랑(charity)

 

오늘날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성경에는 사랑을 love로 통일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KJV 성경은 사랑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love)과 형제사랑(charity)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형제사랑(charity)은 거듭난 성도들안에서 활동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구분하지 않고 성경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혼란을 겪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해석하려고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모든 것들을 형제 사랑으로만 해석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해석하려는 이들 가운데는 신비주의자들이 많고, 형제사랑으로만 해석하는 이들은 자유주의, 해방신학자들이 주류를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명백하게 이 두 가지의 사랑에 대하여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요구되고 있는 사랑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형제사랑(Charity)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하는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들이 형제, 혹은 자매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어야 할 사랑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사랑에 대하여 표현하면서 얼마나 형제들과의 사랑이 중요한지에 대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린도전서13:1-3)

 

이 말씀을 자세히 보십시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상태에서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행동을 합니다. 그들은 달콤한 말로서 사람들을 감동시키려 하고, 매우 믿음이 있는 사람처럼 행동을 하며, 심지어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헌신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행동에 대하여 아무 유익이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이 없다면 그들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은 아무런 보상도, 가치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산다고 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제 아무리 많은 일들과 주님을 위해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실제로 능력이 있다고 말하면서 연약한 성도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매우 믿음이 있고, 헌신하는 사람처럼 행동을 하면서도 다른 이들에 대하여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는 사람들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는 주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사랑을 말할 때 대부분은 하나님의 사랑(love)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심지어 사랑(love)이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 있기도 하지만 그것도 우리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사랑(charity)은 조금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들은 이 사랑을 반드시 실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3.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우리는 형제사랑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에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형제사랑을 잘 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는 부분들을 보십시오. 그는 분명히 형제사랑이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자연스럽게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

 

하나님께서 사랑할 마음을 주셨는데 우리가 오래 참을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이후에 말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바울은 이 말씀을 기록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랑을 위해서 많은 부분에서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구원과 관련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이러한 사랑을 실천 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love)하는 일에는 성령께서 도우시고, 지속적으로 그러한 마음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형제사랑(charity)을 하는데 있어서는 많은 부분에서 참고 희생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두 가지의 사랑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세워 가는데 있어서 이 두 가지의 사랑은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사랑(love)은 성령께서 도우심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성숙해 가는 것이지만 두 번째 사랑(charity)은 우리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어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교회를 찾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담배를 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고 교회를 잘 출석하면 주님께서 끊게 만들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반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가 담배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끊도록 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이후에 자신의 행동이 덕스럽지 못하다고 판단이 되어 스스로 끊게 되는 것이지 하나님이 그러한 행동까지 일일이 간섭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형제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랑은 극히 실천적이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인내하고 참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나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즉 마음으로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도 그의 행동으로는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은 너무 가식적인 것은 아닙니까?”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지금 그가 사랑하는 것은 그의 죄 된 몸이 아니라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자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는 지금 사랑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지금 이러한 사랑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4. 사랑은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도록 요구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 땅에서 뿐만이 아니라 장차 다가 올 세상에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13:8-10)

 

주님의 교회는 장차 다가 올 천국의 또 다른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교회는 장차 주님의 나라에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한 백성들을 훈련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마찬가지로 장차 주님의 나라 안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듯이 주님의 나라 안에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장차 달라질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그분의 말씀을 듣고 배워야 하지만 그곳에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직접 대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고전13:12). 그리고 오늘날 교회들은 다양한 언어로 민족마다 국가마다 다른 언어로 인하여 교제할 수 없어서 통역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만 주님의 나라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이 세상의 교회들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장차 주님 앞에 서게 될 때에 완전한 모습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필요한 것은 있습니다. 바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사랑하도록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이 땅에서처럼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으며, 또한 돈을 벌기 위해 힘을 쓰거나, 아름다워지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다만 하나의 목표가 있다면 그분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누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형제를 사랑할 줄 아는 자이며,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속한 교회 안에서 훈련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결론

 

바울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무엇이 제일이라고 말합니까? 그것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막연한 사랑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 은사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은사는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의 유익을 위해 각 지체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사랑을 해도 되고 안 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지금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것보다도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점검해 보십시오. 혹시 우리는 사랑할 만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아예 관심도 없는 것은 아닙니까? 이제 우리의 눈을 형제들에게 돌려야만 합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교회 안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제 아무리 많은 일들과 헌신, 그리고 능력 있게 보인다 할지라도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는 이미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이제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것은 주님의 명령이자, 가장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너희의 모든 일을 사랑(charity)으로 행하라(고전16: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charity)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3:14)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랑할지니 사랑(charity)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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