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들의 굿과 예배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말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생각보다는 심각한 많은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교회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많은 예배들은 실제로 무당의 굿과 매우 흡사한 내용들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사람들에게 은혜로운 예배로 인식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굿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봅시다. 그것은 현재 당하고 있는 각종 재앙으로부터 해방되고, 또한 만사형통을 기원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들의 힘을 빌려 자신들의 소원을 이루고, 굿은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통로와도 같습니다. 그것은 신을 기쁘게 만들어 주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며, 이 의식이 성공적으로 마쳐지는 순간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습니다.
그 외에도 알 수 있는 것들은 무당이 이 굿의 모든 것들을 주도하며, 적절한 형식을 유지하고 있고, 굿을 할 때 걸어 놓는 ‘지전’이나 ‘헌금’을 ‘별미라고 하는데 이는 신들을 기쁘게 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이러한 일들에 소홀하게 된다면 그 굿은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무당이 ’신 내림‘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는 황홀경에서 완전히 마귀의 사람이 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굿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드리고 있는 예배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보통 사람들은 예배를 통하여 특별한 능력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들은 예배가 병을 고치고, 가난의 문제를 해결 받고, 신비스러운 체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인도하는 자들은 마치 무당과 같이 스스로 신비스러운 말을 하기 위해서 힘쓰는 것으로 보이며, 듣는 이들도 박수를 치고, 입신을 하며,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면서 예배를 더욱 뜨겁게 만듭니다. 그들은 예배를 하나의 공연이나, 축제의 장으로 생각합니다.
이 모든 일들의 주도자는 당연히 목사입니다. 모든 예배는 목사의 주도하에 진행이 되며, 성도들은 다만 구경꾼으로 자리에 앉아 있을 뿐입니다. 교회는 적절한 예배의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 의식들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관계없이 진행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능력 있는 것으로 인식이 됩니다. 가령 사람들은 축도가 없는 예배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성도가 예배에 참석하는 가장 주된 목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주일성수’라는 이름으로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교회에서 말씀을 듣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을 받는 수단으로 여기게 된다면 정상적인 가르침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헌금을 함에 있어서도, 마치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이므로 그는 심판을 받아 가난해 질 것이라고 협박하는 것도 정상적인 가르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이라면 헌금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감사로 드려지는 것이지, 복을 받는 수단으로서 사용될 수 없는 것임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예배가 무당의 굿과 같이 신비스럽고, 그 의식을 통하여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지워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예배는 경배의 수단이기는 하지만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일에 있어서도 개인적으로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는 무당이 아닙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 일 뿐이며, 예배는 경배의 수단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