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사람의 실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답은 엄격히 말해서 정답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 안에 영과 혼과 몸이 하나를 이루어 실체, 즉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증거들을 보면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하면서도 실체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혼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성경 안에는 사람의 수를 셀 때 혼의 숫자로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과 함께 이집트에 이른 혼은 야곱의 며느리들 외에 예순여섯 혼으로 이들은 다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자들이며 또 이집트에서 요셉에게 태어난 아들들 두 혼이 있으니 야곱의 집 혼으로 이집트에 이른 자가 모두 일흔 혼이었더라(창46:26,27)
이 영들은 일찍이 노아의 날들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곧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하던 자들이라. 방주 안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자가 몇 안되니 곧 여덟 혼이라(벧전3:20)
우리는 이 외에도 많은 곳에서 혼을 사람의 수로 헤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창46:15,18,행2:41,43,7:14). 왜 사람의 수를 말할 때 혼의 수를 말했을까요? 그것은 사람의 실체가 바로 혼이라는 사실을 성경이 스스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외에도 사람을 지칭할 때 혼으로 대신하여 표현하고 있는 구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창12:5,17:14,롬13:1,출12:19). 우리를 더욱 흥미롭게 하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심에 있어서도 혼의 구원에 대하여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에 이를 자들이 아니요, 오직 믿어서 혼의 구원에 이를 자들이니라(히10:39)
그러므로 모든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접붙여진 말씀 곧 능히 너희 혼을 구원할 수 있는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약1:21)
이는 너희가 너희 믿음의 결말 곧 너희 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벧전1:9)
그리고 구원받지 못할 자들에 대하여는 혼을 잃는 것으로 표현하면서 그것은 전부를 잃는 것과 같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혼과 바꾸겠느냐?(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魂)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혼과 바꾸겠느냐?(막8:36,37)
혼을 잃는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혼이 떠난다는 것은 바로 단순히 그의 몸에서 분리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혼이 그 몸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곧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혼이 떠나려할 때에 (이는 그녀가 죽었음이더라.) 그녀가 그의 이름을 베노니라 하였으나 그의 아버지가 그를 베냐민이라 하더라(창35:18)
혼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우리는 영적 해석을 한답시고 엉뚱한 결혼을 내리기 쉽습니다. 가령 혼이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끊어진다는 말의 표현을 어떻게 이해하시겠습니까? 매우 흥미로운 것은 이 혼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한 성경들의 대부분은 아예 이 구절에서 혼에 관한 구절을 대신하여 한 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흠정역>너희는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을 것이요, 그 첫째 날에 너희 집에서 누룩을 제거할지니 이는 누구든지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누룩 있는 빵을 먹는 혼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임이라(출12:15)
Seven days shall ye eat unleavened bread; even the first day ye shall put away leaven out of your houses : for whosoever eateth leavened bread from the first day until the seventh day, that soul shall be cut off from Israel(Exo12:15).
<개역>너희는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칠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출12:15)
<흠정역>이레 동안 너희 집에 누룩이 있지 않게 하라. 누구든지 누룩 있는 것을 먹는 혼은 타국인이든지 이 땅에서 태어난 자든지 이스라엘 회중에게서 끊어지리니(출12:19)
Seven days shall there be no leaven found in your houses : for whosoever eateth that which is leavened, even that soul shall be cut off from the congregation of Israel, whether he be a stranger, or born in the land(Exo12:19)
<개역>칠일 동안은 누룩을 너희 집에 있지 않게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니(출12:15)
그렇습니다! 혼이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끊어지는 것은 곧 죽게 되는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제외되거나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말의 의미와는 다른 것입니다. 만일 혼의 문제로 보지 않고 한 사람으로만 취급되게 된다면 우리는 자칫 이 문제에 대하여 논쟁을 하거나 혼란을 겪을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구약에 있어서도 속죄의 대상이 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짐승을 드렸던 것은 바로 혼을 죄로부터 건져내고 속죄함으로 하나님 앞에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에 따라 그들을 계수(計數)하여 총수를 조사할 때에 각 사람은 자기 혼(魂)을 위하여 [주]께 대속물(代贖物)을 드릴지니 이것은 네가 그들을 계수할 때에 그들 가운데 재앙이 없게 하려 함이니라(출30:12)
너희 혼의 속죄를 위하여 [주]께 헌물을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보다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죄 돈을 취하여 그 돈을 회중의 성막에서 섬기는 일에 쓰도록 지정할지니 이것이 [주]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념이 되어 너희 혼을 속죄하리라(출30:15,16)
이처럼 혼은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 쉬운 예로 우리는 간혹 다른 사람이나, 혹은 그들의 신, 아니면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그의 서신을 통하여 비슷한 표현을 쓰고 있는데 바로 그 자신의 혼을 기꺼이 나누어 주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다정하게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혼까지도 너희에게 기꺼이 나누어 주고자 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소중한 자들이기 때문이라(살전2:8)
이처럼 혼의 존재는 우리의 현실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어떤 속이는 자들은 마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혼과 몸의 존재를 무시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그들은 대부분 금욕적이며 또는 기복신앙을 가진 자들로 매일 참회를 요구하고, 스스로 육신을 학대하며 심지어 완전히 영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 것처럼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사람의 존재를 대표하는 것이 혼이며, 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모셔 들이는가의 여부에 따라서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후로 영이 거듭나서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요구할 때 혼은 그 일에 대하여 결실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모두가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사람은 모두 다른 혼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사람의 영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성령의 열매(갈5:22,23)를 맺는 생애를 요구하지만 이 일에 대한 결과는 혼이 순종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결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혼이 순종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훈련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딤전4:7,6:11). 그리스도인이 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혼은 지속적으로 경건한 삶에 이르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혼은 우리 안에서 어떠한 활동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결심하는 것들이 혼에 의해서 나오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이론으로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스러운 것이지만 최소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바를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로 영은 지식(knowledge)을 소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혼의 활동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없다면 사람들은 구원에 이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을 안다고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을 알았을 때 영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혼은 지식을 소유합니다.
또한 혼에 지식이 없으면 선하지 못하며 발이 급한 사람은 죄를 짓느니라(잠19:2)
내 혼이 여전히 그것들을 기억하므로 내 속에서 겸손하게 되었도다(애3:20)
그리고 그것들을 기억하며, 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수 없이 많은 시간들을 계획하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고민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바로 혼이 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가 가진 지식의 수준만큼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내가 내 혼 안에서 계획하며 날마다 마음 속에서 슬퍼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내 원수가 나보다 높임을 받는 것이 어느 때까지니이까?(시13:2)
그렇다면 지식 가운데 혼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연히 주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엡4:13,빌3:8,골1:10,벧후3:18). 왜냐하면 그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골2:3)입니다. 다윗은 그의 시를 통하여 그의 혼이 찬양하는 이유를 바로 “주님이 행하시는 일”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를 찬양하리니 이는 주께서 두렵고도 놀랍게 나를 만드셨음이니이다. 주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놀라우니 내 혼이 그것을 매우 잘 아나이다.(시139:14)
이는 혼이 단순히 아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하여 스스로 생각하고 또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성령님께 자신을 의지한다는 이유로 분명한 주님의 명령과 사실 앞에서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성령님)은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거듭난 영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 일에 대한 사실들을 알고 또한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혼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감정(emotion)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영도 느낌을 가지고 있음에 대하여 소개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이 순간적이고, 초월적인 것이라면 혼은 극히 현실적이며, 시각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혼이 괴로워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백성이 각각 자기 아들딸들로 인해 그 혼이 괴롭게 되어 다윗을 돌로 치자고 말하므로 다윗이 크게 곤란을 당하였으나 주 그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스스로 용기를 내었더라.(삼상30:6)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그녀의 혼이 속에서 괴로워하니 그녀를 가만 두라. 주께서 이것을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하니라.(왕하4:27)
우리를 더욱 흥미롭게 하는 것은 주님 자신도 혼이 있음을 성경이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거하여 버리고 [주]를 섬기니 그분의 혼이 이스라엘의 고통으로 인하여 근심하시니라(삿10:16)
그때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혼이 심히 슬퍼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마26:38)
지금 내 혼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이때로부터 나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런 까닭으로 이때까지 왔나이다(요12:27)
그가 미리 앞을 내다봄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말하되 '주의 혼이 지옥에 내버려지지 않았으며, 또 주의 육신도 부패되는 것을 보지 못하였도다.' 하였느니라.(행2:31)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슬픔이라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는 영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육체로 죽으심에 대하여는 말하면서도 그분께서 인격을 지니신 분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완전한 사람이셨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분은 혼이 있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혼으로 감정을 표현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많은 곳에 걸쳐서 혼의 기쁨에 대하여 말씀합니다(사55:2,61:10,잠16:24).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 모양으로 감정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혼은 분명히 어떤 상황에 대하여 보고 판단하여 감정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슬픔, 기쁨, 괴로움, 낙심...등 사람의 속에 드러나는 것들은 혼의 활동이라는 사실들이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셋째로 혼은 의지(will), 즉 어떤 일들에 대하여 결정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혼의 구원에 대하여 말할 때에 그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의지(will)의 활동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혼이 내 생명을 택하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욥7:15)
이제 너희는 마음과 혼을 가다듬어 주 너희 하나님을 구하라.(대상22:19a)
내 혼이 만지기도 거부한 것들이 나를 슬프게 하는 음식같이 되었도다.(욥6:7)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면 혼의 활동을 무시해야 하는 것처럼 말을 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우리의 영을 인도 하는대로 행동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혼이 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람의 영의 생각대로 그들의 의지를 가지고 순종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모든 옳고 그름에 대한 지시와 판단은 영을 통해서 오지만 순종하는 것은 혼의 의지에 따라서 생겨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성령을 통해 진리에 순종함으로 너희 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 없이 형제들을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1:22)
이제 혼에 관한 결론을 내려봅시다. 혼은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실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벧후3:9). 그러나 이미 육신이 죽은 자들의 혼들은 오히려 속히 심판이 임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만 합니다.
그분께서 다섯째 봉인을 여신 뒤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들이 붙잡은 증거로 인하여 죽임을 당한 자들의 혼(魂)들이 제단 아래에서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오 거룩하고 진실하신 주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에 대한 원수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그들에게 각각 흰 예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더 안식하되 그들의 동료 종들과 형제들도 그들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계6:9-10)
우리의 혼을 무엇이 구원할 수 잇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람들의 혼이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스스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오직 그것만이 사람의 혼을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반드시 혼의 구원을 이루어서 주님 앞에 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접붙여진 말씀 곧 능히 너희 혼을 구원할 수 있는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약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