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유에 뉘었으니(눅2:1-7)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예수님께서 태어날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로마의 가이사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주변의 나라들이 모두 지배를 당하게 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가이사 아구스도의 본명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인데, 그에게 붙여진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는 존귀한 자라는 의미로 사람들은 그를 신과같이 숭배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는 식민국가들을 체계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백성들의 수를 정확히 파악하여 세금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인구조사를 실시합니다. 그 까닭에 사람들은 호적을 등록하기 위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자신들이 살고 있었던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 10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여 그들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에 있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이미 성경은 예언하기를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미 5:2)고 말씀하였습니다. 만일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이 없었다면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곧 가이사 아구스도에 의하여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경륜은 사람을 통해서든지, 아니면 사건을 통해서든지 그분의 뜻 안에서 진행되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 아래 진행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신 곳이 구유라는 사실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을 정리하기 위한 여행을 하는 동안 아이를 낳게 되었지만 그들을 위하여 묵을 여관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에 그들은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7)에 뉘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묵을 곳이 없어 구유에 누이신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진정한 목적을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하시는 동안 언제나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왕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평범한 시민이었던 요셉의 집안에서 나신 사실을 생각하면 진정으로 주님께서 구원하고자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의 첫 번째 대상은 바로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로부터 시작하여 부요한자들을 부끄럽게 하심으로 온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구유에 뉘셨다는 것입니다. 구유는 가축의 먹이를 담아주는 그릇입니다. 이 구유가 여관에 있어서 여행자들을 위한 말이나 낙타의 먹이를 담는 그릇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지만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친히 양식이 되어 구유에 뉘이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유에 누이신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친히 양식이 되기 위해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완성하실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을 통하여 모든 믿는 자들의 영적 생명을 유지시켜주십니다. 모든 믿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하신 것과 같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는 말씀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친히 양식이 되신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