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바울이 보는 죄

조회 수 3086 추천 수 0 2010.06.05 10:44:28

4 장 바울이 보는 죄

 

죄 문제를 바로 알아야 하는 이유는 복음이 바로 죄로 인하여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죄가 없었다면 예수님의 죽음도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더 이상 저주받은 상태에서 살 이유가 없습니다. 죄 문제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하는 것이 바른 믿음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분명히 구원을 받지 못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죄라는 말을 그의 서신에서 62, 그리고 로마서에서만 48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죄에 대하여 말함에 있어서 로마서의 말씀을 주로 다루게 될 것입니다. 죄 문제를 바로 알기를 원한다면 먼저 로마서를 한 번 읽고 정리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모든 사람은 죄 아래 있다.

 

죄가 어디에서 왔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최초의 사람이었던 아담으로부터 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결국 그의 아내와 더불어 불순종함으로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3:6). 바울은 분명하게 죄가 아담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5:19)

이 죄는 단순히 아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게 되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죽은 것입니까? 바로 영이 죽었습니다. 사람의 영은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담은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서 930세가 되던 해에 죽었습니다. 그가 그 때까지 산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그의 혼과 육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은 죽었습니다. 이후로 그는 많은 자녀들을 낳았고, 그에게서 나온 자녀들은 모두 영이 죽은 상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3:9)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

우리가 언제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느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태어남 에서부터 죄인의 상태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의 속성이 사람의 마음 안에 자리함으로써 스스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죄를 짓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죄인 아닌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비록 그가 선하게 세상을 살았다 할지라도 그는 그의 행함과 관계없이 나면서부터 죄인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으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가 예수님과 같이 친히 하나님께서 만드신 존재(1:3)였다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면서 죄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신 분은 오직 한 분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 가운데 죄인이 아닌 자는 아무도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2. 율법과 죄는 서로 관계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물론 구약 성경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죄인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보다 분명하게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율법이었습니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5:13)

바울의 이 선언은 자칫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이전의 사람들은 죄인이 아니었다는 말씀입니까? 만일 그렇게 이해를 했다면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죄에 대하여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지 그들이 의인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죄인이며,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은 자들은 모두 지옥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7:7-11)

바울은 율법의 하는 일이 바로 죄를 알게 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다면 당연히 사람들은 죄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함으로서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율법 그 자체는 다만 정죄하는 일을 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그들을 복음 안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초등교사(schoolmaster)라고 부르기도 합니다(3:24). 결국 율법의 역할은 죄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3:20)

어떤 사람들은 율법을 행함으로 의로워질 수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복음을 듣고 믿었다고 하는 이들조차도 이러한 사실들에 대하여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죄를 알게 하는 그 이상의 어떠한 것도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율법을 지킴으로서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3. 죄는 죽음을 낳는다.

 

그렇다면 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이미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이 되는 결과가 왔음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그것은 사람 안에 있는 영, , 육의 속성 가운데 영이 죽은 상태라는 점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과 관련하여 성경 안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의 대상이 아담 때에 죽은 영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있었던 혼이라는 점입니다(10:39, 벧전1:9, 벧전 1:10). 그렇다면 죄로 인해 무엇이 죽게 될 것인지 명백해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혼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6:23)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7:11)

그렇습니다. 죄로 인해 이미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영이 죽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혼과 육신도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결국 죄는 우리의 존재를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로 인하여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누가 사망을 피해갔습니까? 제아무리 죽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가 죽음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은 죽음의 원인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우리가 죄로부터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보여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5:21)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6:16)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고전 15:1-3)의 사건을 감상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극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죄로 인하여 죽게 된 상황에서 그들을 건져낼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시기 위해서 순종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죄로 인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이 죽음으로부터 살 수 있는 유일한 길,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깨닫고 영접함으로써 죽음으로부터 빠져 나와야만 합니다. 지금 우리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4. 죄는 그리스도의 활동과 복음전파를 방해한다.

 

구약성경이 누구에 대하여 기록된 것입니까? 이미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 자신이 고백하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며, 또한 구약의 선지자들조차도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사실들에 대하여 알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과 선지자들을 죽이고, 핍박하고 반대하는 자들이 되어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막았습니다.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살전 2:15-16)

왜 유대인들은 그러한 행동들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막고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들 안에 있는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 죄는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지각이 어두워지고 눈 먼 존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후 3:14)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4:18)

사람들은 단순히 죄가 도덕적으로 악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적인 문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었던 수많은 성도들을 죽였습니다. 그들은 물론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사람들을 죽이고, 결박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엄청난 살인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떨까요? 지금도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을 결박하고 죽이는 일들을 행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사실이 없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죽이는 일에 앞장 설 것이며, 그들 스스로가 무지하고 눈 먼 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죄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인된 사실이 없다면 그는 여전히 죄인의 상태임을 기억하십시오.

 

5. 죄는 거룩하지 못한 삶을 사는 것이다.

 

죄가 무엇입니까? 그 답은 간단합니다. 거룩하지 못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더욱 적극적인 표현을 써서 말하기를 우리의 몸, 즉 지체를 불법에게 내어주어 부정함과 불법에게 종으로 내어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6:19-20)

이것은 크게 두 가지의 상황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인(natural man)으로서의 종노릇입니다. 바울은 이 표현을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죄의 종입니다. 당연히 그들에게 거룩한 삶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죄의 종노릇합니다. 바울은 그들에 대하여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라는 말의 표현을 둠으로써 그들이 신실하게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정함과 불법에게 종으로 내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구원과 관련짓는 데는 무리가 있지만 그들이 연약함으로 행하고 있는 죄들도 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것은 마땅히 그리스도인들이 끊어내야만 합니다.

자연인에게 죄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의 죄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오해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듭나면 아무리 죄를 지어도 구원이 취소되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가 성경도 알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사실이 없는 자이거나, 또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지 못하여 결국 주님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될 자라는 것입니다. 바울도 자신이 버림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자신이 버림을 받을 수도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고전 9:27). 그것은 구원이 취소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으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4-16)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죄와 분리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그 순간부터 죄와는 상관이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자 하는 욕망이 마음 안에서는 계속되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것들과 분리되어야만 합니다. 만일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게 된다면 그는 책망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사역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죄로부터 분리하도록 돕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삶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6. 죄는 육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성경 안에는 육신이 성령과 서로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육신이 죄를 지으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성령(聖靈)은 그 이름에서 말하고 있듯이 거룩하게 살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대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육신의 속성들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7:23)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5:17-21)

육신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날 동안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건의 훈련을 위하여 금욕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도덕적으로 흠이 없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으로 그들은 그들의 육체를 학대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육신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포기해야 할 대상이지 훈련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5:24)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육신을 죽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까? 바울은 이 문제의 해답을 명쾌하게 대답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6:6)

이 죽음은 우리의 몸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면 자신의 몸에 자해를 가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직도 속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해침으로 그들의 육신의 정욕들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거짓입니다. 육신은 그 자체가 죄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완전히 죽어야만 죄의 속성이 드러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 해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그분이 죽으신 것은 바로 우리의 이러한 죄의 속성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믿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를 짓고 있다면 그는 아직도 육신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7:14)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8:6-13)

바울은 이처럼 많은 부분에 걸쳐서 영적인 사고를 지니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육신적인 사고들을 제거해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속성은 죄를 지니고 있습니다. 육신은 훈련의 대상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기억해 두십시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할 대상이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오직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생활을 하도록 해야만 합니다.

 

7. 죄는 몸 안에 거한다.

 

앞의 주제와 비슷한 내용으로 다시 설명할 필요를 느껴서 정리합니다. 바울은 육체가 단순히 죄성을 지니고 있다는 설명과는 별도로 죄를 마치 하나의 인격체처럼 말하고 있는 모습들을 봅니다. 그것은 죄가 마치 사람을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6:12)

죄가 사람의 몸 안에서 지배한다는 말의 표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어떤 다른 존재가 속에서 그를 통치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사람의 몸 안에서 그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에 육신과 죄는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며, 더욱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몸이 죄가 들어오도록 허락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몸, 즉 육신의 속성이 죄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3-25)

바울은 자신의 몸을 들여다봤을 때 스스로 비참함을 느끼고 있었고, 또한 사망의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비록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자이지만 몸은 여전히 죄를 더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토록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룩한 생애를 살 수 있었던 것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기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육신도 여전히 죄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7:20)

보십시오! 그도 여전히 그가 마음으로 원치 않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의지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몸 안에서 끝없이 죄가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죄는 그가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떠나지를 않고 있었습니다. 왜 성도들이 깨어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죄가 그들 안에서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잠시라도 육신의 요구대로 살게 된다면 그는 결국 성령의 일을 거스르고 죄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깨어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지혜가 있어야겠습니다.

 

8.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의 상태로부터 벗어나도록 하셨다.

 

그럼 우리에게 희망이 없는 것입니까? 죄가 우리의 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과연 영원히 죄를 짓고 살아야 하는 건가요?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희망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과 이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 대하여 의롭다고 인정(칭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4:2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5:15-17)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6:6)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채찍에 맞으시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고, 손과 발에는 못이 박히신 채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것으로 부족해서 창으로 심장을 관통해서 온 몸의 피와 물을 쏟으셨습니다. 왜 그토록 심한 고통을 당해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죄를 섬기지 않고 의인이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확신이 있느냐고 물으면 확신도 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확신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물으면 환상을 보거나 기적을 체험했거나, 자기 안에 증거(방언, 병 고침)가 있기 때문에 자신은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속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려 죽으심은 우리가 방언을 하거나 환상을 보거나 병을 고치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1:7)

이 시대에도 속이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이며, 또한 피 흘려 죽으신 사실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제 아무리 경건한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죄 용서의 방법은 오직 한가지 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피를 통한 것입니다.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6:20)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2:1)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3:22)

 

9. 죄 사함은 은혜로 얻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죄의 문제는 누구의 의지로 해결될 수 있었습니까? 과연 사람들이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감동하셔서 얻어진 것입니까? 아니면 불쌍하게 보여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까? 그것은 모두 정답이 아닙니다. 죄 사함은 은혜로 얻어진 것입니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2:5)

죄 사함을 요구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두 죄인의 상태이므로 거룩함과는 거리가 먼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육신의 본능을 따르기 좋아하며, 하나님 앞에 범죄 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결코 죄 사함을 경험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5:20)

어떤 이들은 바울의 이 말씀을 가지고 죄를 많이 지으면 은혜도 더 많이 주실 것이기 때문에 범죄를 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이 말씀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먼저 이 말씀이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며, 또한 율법이 죄에 대하여 말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알게 함으로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알아갈수록 죄가 넘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모든 죄들을 용서하실 것이므로 은혜도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죄 이상으로 넘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6:14)

바울은 더 이상 죄가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을 지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죄와 상관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만일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방종입니다. 어쩌면 그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미워할 것이며, 또한 거룩한 삶을 통하여 죄와 분리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삶의 모습들은 어떻습니까? 죄를 대하는 자세는 곧 그리스도인의 신앙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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