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부스러기를 얻는 자세를 가지라

조회 수 3352 추천 수 0 2010.06.09 11:35: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마태복음15:27)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다니실 때에 가나안 여자가 자신의 딸이 귀신에게 몹시 시달리고 있음을 하소연하며 고쳐주실 것을 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냉정하게 거절하시며, 오히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으로 여인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십니다. 여인은 모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고 말함으로서 문제의 해결과 아울러 믿음을 칭찬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예수를 믿으려면 수치와 모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믿어야 하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 말씀을 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안에는 이방인 사역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이 함축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가나안 여인이 이방인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온 여인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7:25)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올 수 있었던 것은 예수에 대한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이 소문이 없었다면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 앞에 나올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녀는 이미 딸로 인해 깊은 좌절에 빠져 있었음이 분명했고, 그의 열정으로 보아서 모든 의술과 마술 등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고쳐보려는 노력을 기울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러한 그녀 앞에 더러운 귀신 들린 자는 물론 문둥병자, 각색 병든 자 등 모든 질병을 고치신다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문은 희망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이 소문에 근거해서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소문(참된 복음)은 많은 사람들을 희망으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누가 절망하고 있는지, 또한 소문(복음)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문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그 앞으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소문 즉 복음은 전해져야 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들이 아름답다고 말했듯이 우리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복음의 소리가 많은 믿음의 사람을 만들어 내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소문에 매우 인색해져 있음을 봅니다. 지나칠 정도로 개 교회 주의를 추구하다보니 복음의 소문을 내기보다는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를 자랑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을 봅니다. 자연스럽게 복음은 교회 안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땅에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기를 원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나와 교회가 아닌 복음의 소문을 낼 수 있는 성도여야만 합니다. 내가 지금 누구를 말하고 있는가? 깊이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박대

 

성경 전체를 읽어가는 중에 우리를 매우 당혹케 하는 것은 어떻게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취급하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죄인과 함께 잡수시며, 각색 병든 자를 고치시고, 새 계명으로'사랑하라'는 명령을 하고 계신 예수님의 입에서 여인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는 언뜻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욕 뒤에 나온 여인의 태도는 예수님의 의도를 짐작케 합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그녀가 죄인임을 스스로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이 그녀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은 연약하며,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죄인이기 까닭에, 주님이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기 까닭에 문제를 해결하신다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하여 묻는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스스로 죄인 됨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미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시에 의인이라고 자처하던 서기관, 바리새인, 제사장들과 함께 하시지 않고 세리, 가난한 자, 병든 자와 함께 하시는 이유도 그들이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리가 의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연약하며, 무능하며,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주님은 만나 주셨습니다.

 

본문의 가나안 여인이 부정한 영이 들린 딸을 위해 무엇인들 안 해본 것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았고 결국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완전한 자기 포기가 된 자라야 만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요구하고 계시며, 고백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부스러기를 구하는 여인

 

예수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주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을 때 여인은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를 먹는다는 말씀으로 답합니다. 예수님은 이 대답을 한 여인에게 믿음이 크다는 말로써 칭찬하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부스러기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걸하는 거지나, 가난한 자만이 먹을 수 있습니다. 이방인인 가나안 여인이 부스러기를 구함과 같이, 이방인 된 우리 역시 부스러기인 복음을 구하는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유대인들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그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구약 성경을 하나의 소설이나 이야기처럼 다루어 생활의 표본으로 삼으려 하고 있지만 사실은 예수님에 관하여 기록한 것입니다(3;16).

 

어린양 되신 예수님께서 유대인들, 특히 대제사장에 의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40일을 함께 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10일이 지난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함으로 복음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대전역에 복음이 확산되고 이방 지역에까지 복음이 전파됨으로, 이제 복음은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을 벗어나 이방인에게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을 먹이신후 12광주리를 남기신 예수님께서 남겨진 보리떡과 물고기를 이방지역에 풀어서 먹이시는 것입니다.

 

이 부스러기들은 아무나 먹을 수 없습니다. 배고픈 자만이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이방지역에 전파되었지만 모든 민족이 영접하기는 않습니다. 배고픈 민족, 양식에 갈급해 있는 자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가나안 여인이 만일 더러운 귀신이 들린 딸의 병을 고치고자 하는 열망 위에 예수님께서만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믿음과 갈급함이 없었더라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인이 부스러기를 구함과 같이 오늘날의 성도들로 부스러기를 얻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부스러기를 얻는 과정

 

부스러기는 가만히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아닙니다. 만일 거지가 집에 가만히 앉아서 먹을 것을 기대한다면 그는 멀지 않아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먹을 것을 찾아다니며 구하는 자라야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7:7).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이 주일에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듣는 것으로 자신의 신앙이 유지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생명이 있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면 자신이 매우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스러기를 얻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참된 진리를 만나기가 어렵다는 사실과도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얻는 과정에서 부스러기를 얻는 생활의 지혜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출애굽기 16:13-20).

 

그들은 아침 일찍 나가서 만나를 거두어들였습니다. 만일 거두지 못하면 그 날은 굶어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성실하고 근면해야 하는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지런함과 성실함은 그리스도인들의 기본적인 자세여야 합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책망 받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25:14-30). 그리스도인들이 만나인 말씀을 대하는 자세도 이러한 자세가 중요합니다. 환경적으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하루의 시작을 말씀으로 시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또한 만나는 그 날만을 위해서 주어졌습니다. 전날 거두어들인 만나는 벌레가 생기거나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말씀도 매일 매일의 생활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거두는 시간은 잠깐이지만 그들이 이 양식으로 하루를 생활했듯이 우리도 그날그날 말씀의 양식을 거두고, 하루의 생활을 말씀 안에서 생활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만나는 그 자체가 가장 맛있는 양식입니다. 만나는 그 맛이 꿀 섞은 과자와 같았습니다(16:31). 그러나 백성들은 이 만나를 요리해서 먹게 되었고(11:8), 나중에는 박한 식물이라고 천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21:5). 꿀의 맛이 음미할수록 깊고 달콤한 맛을 내듯이 만나도 그 자체를 먹으므로 더욱 깊고 달콤한 맛을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요리해서 맛없는 양식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볼 때 단순하면서도 맛이 없는 것으로 보여 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철학, 도덕, 기복사상, 자유주의, 신비주의 등을 동원하여 말씀을 요리해 먹임으로 맛없는 박한 식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깊은 맛을 냅니다. 묵상의 시간을 더할수록 더욱 깊은 진리를 맛볼 수 있고, 삶이 변화 되어 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스러기 같은 만나인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매일의 생활을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스러기를 먹는 거지 나사로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16:20,21)

 

어떤 사람은 위의 말씀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뒷받침 하는 말씀이라고 말하면서 경고의 말씀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위의 말씀이 육신적인 부자와 거지의 모습으로 보여 질 수도 있겠지만 결코 육신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나온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부자는 유대인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맡았던 자들로서 어릴 때부터 장성한 때까지 율법의 테두리 안에서 있었던 부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구원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방인들은 언제나 개 취급하기가 일수였습니다. 상종하기를 꺼려했고, 결혼을 금했으며, 어떠한 이방문화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 의해 예수님께서 죽으셨으며,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으며, 율법으로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믿음에서 떠나도록 현혹하였습니다.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모습은 바로 이러한 유대인들의 모습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유대인들 모두를 부자로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사도들,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대부분이 유대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선민사상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무시하고, 부스러기나 던지는 심정으로 이방인들을 대하게 된다면 그들의 결국이 지옥에서 고통 받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면 거지 나사로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그는 부자의 대문에 누워서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했고, 개들이 그의 상처를 핥고 있는 비참한 모습으로 있습니다. 오늘날 복음을 영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방인들입니다. 그들은 부스러기인 말씀을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통 속에서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으며, 개들이 상처를 핥듯이 사탄은 그 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들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소망은 이 땅에 있지 않습니다.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부자가 고통당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듯이 부스러기를 기다리는 거지의 모습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을 소망삼고 살아갑니다.

 

부스러기를 먹을 수 있는 자는 배고픈 자들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부스러기를 찾아 다녔고, 많은 인내와 고통도 뒤따랐습니다.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배고픈 심정, 즉 가난한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하는 자라야 합니다. 비록 그 과정에서 많은 고난과 모욕과 핍박을 받은 것이 분명하지만 이겨내야만 합니다. 가나안 여인의 모욕당함 , 만나를 얻는 백성들의 부지런함, 상처 난 곳을 개들이 핥고 있는 나사로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 모든 것을 쉽게 얻으려는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부디 가난한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하며 풍성한 삶을 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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