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바울이 보는 성령

조회 수 3129 추천 수 0 2010.06.05 10:41:44

3 장 바울이 보는 성령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관심이 있는 주제를 말하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령의 존재에 대하여 알고 싶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방언이나 환상, 예언과 같은 것들을 경험하고 있고, 또한 신유의 은사를 가졌다고 말하는 많은 이들로부터 신비스러운 체험을 함으로서 그것이 성령으로부터 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바울이 말하고 있는 성령이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방법에 의하여 오지 않으며, 또한 극히 왜곡되어 설명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성령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을까요?

 

1. 성령은 복음을 듣고 믿는 데서 온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옵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3:6)

오늘날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우리는 다양한 대답을

듣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 있는 분의 안수함을 통해서, 또 어떤 이는 상대방이 시키는 대로 기도를 했더니 성령이 임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특별한 경우에는 길을 지나다가 갑자기 성령이 임했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병 고침을 받았으므로 성령이 임했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옳은 것 같지만 결코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동기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경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3:2-5)

그렇습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능력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개인의 감정과 훈련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 방법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믿음에 관하여 들음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복음이라고 말합니다(고전 15:1-3). 이 경로를 거치지 않은 것은 모두 거짓입니다.

종교는 수련을 통하여 오늘날 신비주의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행하는 것과 동일한 것을 행합니다. 그들은 병자들을 고치기도 하며, 환상을 보기도 하며, 기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성령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교회 안에서 아무리 많은 기적적인 일들을 일으킨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없이 행해진 일이라면 그것은 성령의 일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억해 두십시오. 성령은 오직 복음을 듣고 믿는 데서 옵니다.

 

2. 성령은 보증으로 주신 것이다.

 

만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기 전의 상황과 변한 것이 없다면 그들이 그리스도인 됨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아마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혼란을 겪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를 전혀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교회 안의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로 인하여 고민을 합니다. 물론 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마음속에 성령이 없는 까닭에 구원을 깨달음이나, 하나님의 예정, 그리고 행위의 결과에 따라 얻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8:16)

성경은 분명하게 성령이 우리의 영과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스스로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즉 구원 받은 사실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당연히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의심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2)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후 5:5)

구원받은 자들은 당연히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한 것과는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구약의 개념으로 성령을 이해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로 그에게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보증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령을 슬프게 하거나 불순종하게 된다면 성령이 그에게서 떠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 어디에도 성령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서 떠난다는 말씀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4:30)

만일 그리스도인 된 자들이 성령의 인도대로 살고 있지 못한다면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구원이 취소되거나 버림을 받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성령이 완전히 떠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안에는 성령이 언제나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보증으로 주셨습니다.

 

3. 성령은 육신의 욕심과 대조를 이룬다.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사람들은 모두 육신에게 속해 있는 자입니다. 무엇이 육신에게 속해 있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혼(soul)입니다. 사람들의 실체는 바로 혼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말할 때에도 혼의 구원(10:39,벧전 1:9,10)을 말합니다. 그 혼이 무엇의 지배를 받는가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사람들은 그 안에 성령이 없으므로 당연히 육신 안에 거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과 육체가 함께 존재함으로써 혼(soul)은 이 둘 사이에서 무엇에 순종하며 살아야 할지를 결정해야만 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8:5)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5:16)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6:8)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은 증거로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성령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갈라디아 사람들이 행했던 것처럼 성령 안에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완전해지려 합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3:3)

오늘날 변질되어 가는 교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다는 사실들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성령께 의지하면서 살아가도록 하기 보다는 그들이 스스로 정한 규칙에 따라 살도록 가르칩니다. 어느 순간부터 교회는 일종의 바른 생활교육을 하는 장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성령께 순종하는 생활보다는 육체를 훈련하여 도덕적으로 완전하게 하려고 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8:9)

교회 안에 모인 무리들이 제아무리 도덕적으로 완전하다 할지라도 그들이 성령 안에 있지 않다면 그것은 결코 참된 주님의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아무리 품성이 좋고, 완전하게 보일지라도 성령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가 아니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혹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과 육신은 대조가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성령을 의지해야만 합니다.

 

4. 성령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것이다.

 

성경이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습습니다(딤후 3:16). 이 말의 의미는 곧 성령을 통하여 계시로 성경 기록자들에게 신비(mystery)를 알게 하심으로써 기록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곧 그분께서 계시로 내게 그 신비를 알게 하셨나니 (이것은 내가 전에 몇 마디 적은 것과 같으니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3:3-5)

성경의 기록은 선지자들에 의해 기록이 된 것이지만 실제적인 기록자는 성령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기록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어떤 그림이나 음악, 그리고 기계와 같은 것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만든 자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리를 가장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기록한 성령께 물어보면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2:13,14)

이처럼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성령이 아니고서는 말씀을 제대로 깨달을 수 없음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그림이나 음악, 그리고 기계를 보면서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판단을 하며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시킬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을 만든 자인 것처럼 우리가 성경을 보고 나름대로의 해석을 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을 가장 분명하게 가르칠 수 있는 분은 바로 성령입니다. 제 아무리 훌륭한 성경학자라도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성령께 의지하고 성경을 보지 않는 한 그것은 그들의 이론과 추측에 불과합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살전 1:6)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자뿐만이 아니라 받는 자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역시 성령을 통하여 말씀을 받는 자세가 필요하며, 그것은 분명히 그들의 신앙을 더욱 성숙하고 바르게 자라도록 만들어 줍니다. 성령께 의지하지 않고는 바른 진리를 깨달을 수도 없고, 또한 성숙한 신앙을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진리에 대하여 성령을 의지하는 자세를 가져야만 합니다.

 

5. 성령은 중보자이다.

 

앞의 주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에 대하여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알고 그것을 깨달아 믿고 영접하는데 이를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이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

많은 이들은 훌륭한 성경교사의 가르침을 통해서 복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훌륭한 성경교사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가 반드시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가령 고린도 교회 안에 훌륭한 성경교사였던 아볼로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린도 교회를 바로잡는 일에는 실패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교회 안에 새로운 파당을 형성함으로써 나중에 바울의 책망을 듣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복음을 깨닫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가르침은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룸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성령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2:18)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이 성령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도록 합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열매를 맺는 일도 없습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5:5)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8:26,27)

우리는 기도가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전달하는 정도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도를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이방 종교도 기도를 합니다. 그들은 철저히 자신의 의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방법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 것과 또한 필요들을 성령을 통하여 알 수 있으며, 또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철저히 기도를 돕고 있으며, 또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도록 돕습니다. 성령이 없이는 주님과의 교제도 있을 수 없습니다.

 

6.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성령을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연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바로 이 연약한 사람의 존재를 돕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8:26a)

만일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너무도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악한 마귀들은 지속적으로 우리를 괴롭힐 것이고, 이 악한 세상에서 살아갈 희망을 잃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갈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성령의 권능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 가운데 매우 밀접하게 다가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5:13)

많은 사람들은 성령의 권능이 단순하게 기적이나 능력을 일으키는 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극단적입니다. 성령의 속성은 용어가 말하는 그대로 거룩한 영(Holy spirit)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속성이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게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15:16)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살후 2:13)

성령이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거룩하게 살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기적이나 능력, 병을 고치고 신비스러운 일을 일으키는 것이 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성령께 자신을 맡기고 살아간다면 당연히 거룩함의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가 많은 능력과 기적을 행한다 할지라도 그의 삶이 거룩함과 거리가 멀다면 그는 필시 성령과 더불어 살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거룩한 삶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7. 성령은 은사의 원천이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은사와 관련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은 이들이 없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이 은사를 구원과 연관시켜 가르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눈에 드러나는(가령 신유, 방언, 영분별, 기적 등) 은사를 얻지 못하면 능력이 없는 자로 취급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문제에 대하여 다시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모두 한 성령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 12:7-11)

어떤 이들은 은사를 얻기 위하여 많은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 언제나 간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은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계발해야만 더 좋은 은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 말들을 모두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자신의 의지로 은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잘 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을 통하여 주어집니다.

믿음이 부족한 자에게도 병 고치는 능력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방언를 못하는 자가 지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이 모든 것을 누가 공급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그분의 뜻대로 이 모든 것은 나누어집니다. 그것은 사람의 의지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 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주어진 은사를 주님의 교회 안에서, 혹은 개인의 삶 속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을 통해서 주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성령이 하시는 일은 이 같은 은사에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

성령 안에서 사는 자들에게는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말한 것과 같은 열매들을 맺게 될 것입니다. 그 열매들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의지로 이러한 열매들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화평(peace)을 이 땅에 실현하겠다고 애쓰는 자들을 보셨습니까? 그들은 스스로도 화평을 이루지 못한 자들입니다. 화평을 이루겠다고 돌을 던지고, 비방을 하는 모습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화평은 오직 성령의 활동에 의하여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성령의 활동으로부터 나와야만 합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2)

우리 인생의 집을 어떻게 짓고 있습니까? 성령은 그것을 지어가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 안에서 은사를 공급해 주시고, 열매를 맺게 하심으로 더욱 아름다운 거처를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아직도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집은 결코 사람 자신이 지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지어가는 것입니다. 성령께 맡기십시오. 그렇다면 위대한 생애가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8. 성령은 경건한 삶의 원천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경건한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또한 바울은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딤전 4:7)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모든 경건이 성령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 경건의 기준은 철저하게 천국에 기준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14:17,18)

사람의 눈에 보기 좋다고 경건한 자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기준은 하나님의 기준과 반대되는 때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경건한 삶의 기준은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룩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15:16)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거룩하게 사는 방법이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기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언제나 주님과 더불어 살도록 돕습니다. 이러한 기도를 돕는 것이 바로 성령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6:18)

기도만 한다고 그를 경건하게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 역시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많은 기도의 시간을 보낸다는 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신비주의를 추구하고, 기복신앙을 조장합니다. 그들은 오히려 위험한 자일 수 있습니다. 경건한 삶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사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거듭나기 이전의 육신적인 삶이 아닌 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살전 1:5,6)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3:5)

성령을 통하여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거룩한 존재이며, 또한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게 살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9. 성령은 양심을 지배한다.

 

성령의 존재는 어디에 거하시는 것입니까?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명확하게 답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딤후 1:14)

이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한 것입니까? 물론 사람의 생각으로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입니까? 사람은 영, , 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연인(natural man)으로 있을 때에는 영의 존재는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 한 이후로는 영이 살았고, 결국에는 이 산 영이 성령과 함께 함으로서 그 사람 안에서 활동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9:1)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성령은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인 안에서 활동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영을 지배하고 다스리십니다. 그의 혼을 그의 영에 의지한 자, 즉 영에 속한 사람(고전 2:5)은 당연히 성령과 더불어 살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은 그를 지배하고 거룩한 삶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추구해야 하는 자세입니다.

 

10. 성령은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성령의 활동범위는 어디까지입니까?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분은 어디에서나 계십니다. 이것은 또 다른 의미를 포함합니다. 그것은 믿는 자들이라면 누구든지 한 성령에 의하여 인도를 받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영이 다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사탄에게 속한 악한 영(damon)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입니다. 내 안에 활동하고 있는 성령과 다른 그리스도인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성령이 다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물론 사람마다 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활동이 다르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한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다시 한 번 기억하십시오. 성령은 많은 이들 가운데 거하시지만 오직 한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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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바울이 보는 가정 이진천 2010-06-05
제17장 바울이 보는 여자 이진천 2010-06-05
제16장 바울이 보는 재림 이진천 2010-06-05
제15장 바울이 보는 만찬 이진천 2010-06-05
제14장 바울이 보는 세례(침례) 이진천 2010-06-05
제13장 바울이 보는 마귀 & 사탄 이진천 2010-06-05
제12장 바울이 보는 지도자 이진천 2010-06-05
제11장 바울이 보는 전도 이진천 2010-06-05
제10장 바울이 보는 헌금 이진천 2010-06-05
제9장 바울이 보는 기도 이진천 2010-06-05
제8장 바울이 보는 성경 이진천 2010-06-05
제7장 바울이 보는 교회 이진천 2010-06-05
제6장 바울이 보는 믿음 이진천 2010-06-05
제5장 바울이 보는 몸 이진천 2010-06-05
제4장 바울이 보는 죄 이진천 2010-06-05
제3장 바울이 보는 성령 이진천 2010-06-05
제2장 바울이 보는 예수 그리스도 이진천 2010-06-05
제1장 바울이 보는 하나님 이진천 2010-06-05
바울을 통해 보는 기초교리 이진천 2010-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