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바울이 신약시대의 가장 위대한 전도자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를 연구한다는 것은 곧 신약 성경 전체를 이해하려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구약과 신약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더불어 하나님께서 뜻하시고 계획하시는 바를 실행으로 옮겼던 자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성장과정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행 22:3)
그의 환경은 분명히 평범하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헬라(그리스) 문화가 활발한 대도시 다소에서 태어났고, 이 도시에서 당대 최고의 학자로 인정받았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지식을 얻었으며, 어렸을 때부터 비록 이방 문화, 즉 헬라(그리스) 문화의 중심지에서 자랐지만 율법의 엄한 교훈에 따라 가르침을 받았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선조 때부터 순수한 양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고(딤전 1:3), 심지어 그 자신에 관하여도 유대인의 기준으로 볼 때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빌 3:5-6). 그는 율법뿐만이 아니라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도 매우 열심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갈 1:14).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나면서부터 로마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행 22:26-28). 그것은 바울의 사역을 매우 자유롭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만일 그가 로마 사람이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가 로마로 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예루살렘에서 잡혔을 때에 그는 죽음을 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로마인이 됨은 많은 권세 있는 자들을 굴복시킬 수 있었고, 그것은 이방인 전도에 있어서 그의 사역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무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바울의 회심과정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은 결코 평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도 바울과 같이 극적인 장면을 기대하거나 또한 연출해 내려고 하지만 그러한 상황은 결코 오늘날 일어날 수 있는 광경은 아닙니다. 그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행 6:13)는 말에 동감하고 있었으며,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도 가담하였습니다(행 8:1). 물론 그는 이 일에 대하여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향했습니다. 성경은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장면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행 9:1-2)
그러나 위협과 살기로 가득한 그에게 놀라운 사건이 펼쳐집니다. 그는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는 그 앞에서 고꾸라졌고, 결국 놀라운 계획을 수행하고자 하셨던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된 것입니다(행 9:1-9, 22:6-11,26:13-16).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 이후에 아무도 예수님을 직접 만난 이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바울만이 경험했던 것입니다. 왜 그에게 나타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바울을 제자와 사도로 삼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바울을 그의 제자이자 사도로 삼으시고자 그에게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당시에 아무도 이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에 바울은 그의 서신들을 통하여 편지의 처음부분에 자신이 주님의 부르심에 의해 사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참 제자이자 사도입니다.
바울의 성품
우리는 바울이 매우 겸손하고 화도 낼 줄 모르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오히려 그는 때로 고집스럽고, 성급한 사람이었음을 성경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그는 1차 전도여행에서 동행했던 마가를 2차 전도여행에서 동행할 지의 여부를 놓고 바나바와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행 15:39).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 앞에서도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행 23:3)고 말함으로써 거의 욕설에 가까운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그의 성격은 대담하고 거침이 없는 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러한 그의 성격은 바울 자신에게 있어서 매우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가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좋은 영향보다는 나쁜 결과를 가져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성경 곳곳을 통하여 자신에 대하여 매우 인색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자신이 낮아지기 위해서 힘쓰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 안에 질병이 있을 때에도 오히려 이를 감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분량 이상으로 높아지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고후 12:7).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을 가리켜 죄인 중에서도 괴수, 즉 우두머리라고 말합니다(딤전 1:15). 그리고 사도들과의 비교를 통하여 굳이 자신에 대하여 “사도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고후 12:9)라고 고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울이라는 이름은 “작은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의 본래 이름은 “바란다” 혹은 “희망한다”는 의미인 사울이었지만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맡은 그리스도의 대사(고후 5:20)가 된 이후에는 오히려 작은 자가 되어 세상의 욕망을 따라 살지 않고 오직 주님을 위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전도자로서의 평가
우리가 그의 인물됨에 대하여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뛰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바울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고후 10:10)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육체는 건강하지도 못한 상태였습니다(고후 12:7). 그는 자신이 말에 서투르다고 고백할 만큼 결코 언변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고후 11:6). 물론 어떤 사람은 당시 고린도 교회에 아볼로라는 뛰어난 성경교사가 있었기 때문에 그가 상대적으로 말을 잘 못한 것이지 결코 무능하게 보일 만큼 말을 못했을 리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스스로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매우 담대하게 전했다는 사실만으로 그가 매우 평탄한 사역을 했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엄청난 고난 속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고린도 성도들에게 편지를 쓸 때는 아직 로마에 들어가기 전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옥중에서 쓴 서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바울은 자신이 많은 고난을 이미 당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고린도 성도들에게 고백하고 있는 고난의 정도는 이렇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4-27)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이후의 바울의 생애는 결코 평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 그리고 심지어 교회 안에 있는 자들조차도 그를 원수와 같이 여기려 했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직 복음을 증거 하겠노라고 수도 없이 다짐을 하며 자신을 미워하며 인정하려 하지도 않았던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 이방인들에 대하여는 핍박 속에서도 여전히 전하는 일들을 계속하며, 같은 유대인들에 대하여는 사랑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는 참 복음 전도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던 매우 모범적인 증인이었습니다.
바울의 사역
그의 사역은 크게 구분을 한다면 4단계에 걸쳐서 진행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초기의 모습도 실상은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가 주님을 만난 이후로 초보적인 그리스도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을 향해서 예수님이 그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거 하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행 9:22). 그리고 그는 사도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위하여 준비의 기간을 갖게 되는데, 그는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에서 3년을 보낸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야고보를 만나게 됩니다(갈 1:16-18).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그가 사역을 함에 있어서 혈육과 상의를 한 것이 아니라 사도들과 상의를 하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바나바는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는 바울이 복음 전도자가 되는데 있어서 모든 기초를 놓아 주었던 자였습니다. 바울이 유대인들로부터 경계의 시선을 받고 있었을 때 그가 나서서 바울이 길에서 주를 본 것과 또 그분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과 다메섹에서 그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선포한 것을 밝히 말해 주었습니다(행 9:27). 이 일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고, 후에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로부터 바울을 교사로 불러들이도록 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행 11:25), 이것은 후에 그들이 복음 전도자로 파송을 받게 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충분한 훈련을 받았고, 안디옥 교회로부터 파송되는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행 13:1-2).
그의 1차 전도여행은 바나바의 주도로 진행이 되었는데, 마가와 더불어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구브로 섬을 거쳐 소아시아 중남부에 위치한 지역에서 주로 유대인들의 회당을 중심으로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는 이 사역에서 매우 고생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마가는 이 사역을 견디지 못해 사역 중간에 이탈하여 후에 바나바와 바울이 서로 다투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였습니다(행 15:37-39). 그러나 그가 더욱 힘들어했던 것은 단순히 육신적인 핍박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전도를 하던 가운데 많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장면들을 보게 되면서 그들이 앞으로 율법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어야만 했습니다. 더구나 많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에게 여전히 율법, 특히 할례를 행해야만 한다고 가르침으로서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이 문제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이방인 선교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행 15:1-35).
2차 선교여행은 바나바와의 결별 이후 실라를 새로운 동역자로 삼고 출발하였습니다. 바울은 아시아로 향하고자 했지만 성령에 이끌려 드로아 지방으로 향했고, 결국에는 마게도냐 지방으로 건너가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경로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아덴을 거쳐 고린도에 약 1년 반 동안 머물렀다가 그 후에 에베소를 거쳐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선교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행 15:40-18:22).
3차 선교여행은 2차 선교 여행지를 방문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간을 보냈습니다. 주로 에베소 교회에서 약 3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 인근에 있는 교회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이 기간의 주된 특징을 든다면 많은 서신들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고린도에서, 고린도 전후서는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아덴에서, 디도서는 니코폴리스에서 기록했습니다. 나머지 서신들은 로마에서 기록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로마에 가기를 원했습니다(롬 1:15).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의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께서 인도하기를 구했습니다. 그는 3차 선교여행이 끝난 후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결박을 당하고 가이사랴에서 2년을 감금 당한 후에 재판하는 과정에서 총독 벨릭스, 베스도, 그리고 아그립바 왕 앞에 서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며, 이후로 상소를 하여 그가 로마의 시민권자라는 이유로 그토록 소원하던 로마로의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행 21:17-24:27).
로마에서의 사역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서신이 로마에서 쓰여진 것을 보면 그의 사역이 얼마나 활발하게 진행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디모데 전후서, 빌레몬서를 기록하였고, 그의 사역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주님을 위하여 자신이 하고자 했던 모든 사역을 아름답게 마쳤던 사도였습니다. 바울은 분명히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모범적인 일꾼임이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