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3:18)
베드로가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는 말입니다. 이 말이 매우 일상적이고 단순히 인사 정도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일지라도 그 안에 담겨진 의미는 매우 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마디의 인사는 실제로 신약교회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 안에서 자라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일반적인 세상과 종교와 매우 차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종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도달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행위에서 나지 않고 오직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가르치는 것(엡2:8-9)과는 매우 대조적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종교가 사람의 행위로 구원을 받겠다고 노력하는 것과는 반대로 기독교는 오직 하나님의 의지로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 부르심에 응답한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교가 그들의 구원을 더욱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의 행위를 더욱 갈고 닦으며,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육체적인 모든 욕심들을 하나하나 버리고,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고 따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아직도 일부 거짓 선생들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질 것을 요구하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헛된 욕망을 품게 하고, 우리가 품은 생각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은혜 안에서 자라가는 성도들이라면 그들은 자신 안에 있는 모든 생각들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은혜 아래서 살아가는 삶을 지속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그의 서신을 통하여 마지막으로 성도들에게 요청했던 삶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은혜 안에서 자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즉 지식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만일 은혜 안에서 사노라고 말하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없다면 그는 정상적인 믿음의 삶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정작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겠다고 작정할지라도 주님이 어떠한 삶을 요구하시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면 그는 결국 그릇된 길로 갈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은혜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지식이 동반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지식을 얻은 일에 대하여 매우 게으릅니다. 그들은 진리에 관하여도 그들의 책상 앞에서 간단히 읽고 추측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어버리려 합니다. 그들은 지식을 얻어가는 일들에 대하여 매우 진지하고 신중함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말에 대하여 확인의 절차를 무시한 채 남들을 쉽게 판단하고, 심지어 정죄하려 합니다. 그것은 마귀가 매우 좋아하는 것입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은혜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자신에 대하여는 절제하고 오직 주님께서 자신을 주장하실 수 있도록 만들어 가야하며, 주님을 알아가는 일에 있어서는 매우 진지하고 신중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물론 여기에 더해져야 하는 것은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지속되어야만 하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