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벧후2:3)
거짓선생들이 행하는 방법에 대한 성경의 이 묘사에 대하여 우리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거짓 교사들이 믿는 성도들을 이득을 삼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상품 취급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오늘날과 같이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있는 시대라면 다소 이해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비교적 초세기 교회에서 이러한 현상이 있었다고 하는 것은 다소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활동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특히 중세 시대에는 이러한 일들이 너무도 극심하여 교회가 노골적으로 성도들을 상품 취급하여 돈을 거둬들이고,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거나 신실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을 짓는데 성도들을 이용하거나 심지어는 권세를 얻거나 유지하려는데 성도들을 동원하였습니다. 중세 교회의 사제들에게는 성도들이 노예 이상의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자였습니다. 오히려 그들 가운데 신실한 자들을 잡아 죽이기도 하며, 그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모든 수단과 방법을 아끼지 않았던 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결코 중세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들을 돌아보십시오.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을 짓기 위해 상상을 초월한 물질을 쏟아 붓습니다. 또한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 성도들을 동원하고, 목회자들을 회유하기도 하며, 심지어 자신의 사역에 방해가 되는 집단이 있다면 주님의 교회라도 파괴시키려 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종으로서의 사역자가 아니라 세상에서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집단을 운영하는 대표자(CEO)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도는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아니라 자신이 관리하는 상품입니다.
그들은 성도들이 다른 교회로 이동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옮겨지는 것일지라도 오히려 막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재산에 손실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이동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일부 교회를 제외하고는 성도를 파송하여 다른 교회에서 더욱 신실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안디옥 교회가 교회의 중심 역할을 했었던 바울과 바나바를 이방 사역을 위해 파송했던 사건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왜 그토록 훌륭한 교회를 떠나 고난의 길을 걸으려 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두 사도가 걸었던 길은 종으로서의 삶을 실천하려는 것이었지만 거짓 교사들은 교회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재산을 결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소유이지 어느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거짓 교사들은 마치 자신의 소유인 것처럼 주님의 교회를 자신의 생각대로 운영하려 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에 대한 심판은 오래되어 이제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처럼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자신을 가르치고 있는 자가 바른 진리를 선포하는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사역자일지라도 정신을 차리고 종의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거짓 교사들에 대하여 결코 참으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