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벧전5:12-14)
베드로는 서신을 통해 때로는 권면으로 때로는 칭찬으로 성도들을 대합니다. 그리고 서신의 말미에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는 말로 글을 맺으려 합니다. 물론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서양인들은 실제로 성도들과 가벼운 입맞춤을 하는 것을 불편해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문화와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한국인들의 정서로 성경대로 한다는 이유를 가지고 교회 안에서 성도들로 하여금 입을 맞추도록 가르치고 있다면 그들은 매우 혼란스러워할 것입니다. 특히 이성간에 그러한 일들을 행하도록 가르치게 된다면 더욱 복잡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 말씀이 서로가 입을 맞추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입을 맞추는 행위는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을 하지도 않는데 입을 맞춘다면 그는 정서적으로 이미 많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깊은 관계로 발전해 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은 서로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 필요가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큰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백성들이며, 작게는 이 땅에서 그 나라의 일들을 감당하기 위해서 주님의 교회를 세워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함께 지체가 되어 활동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지체가 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대방이 정상적으로 활동하지 못하게 된다면 자신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 몸 안에서 같이 움직일 수 있어야만 건강한 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까닭에 성도들은 서로를 더욱 존중하고 사랑하며, 아껴주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을 보십시오.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음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사랑하라고 하셨나요? 바로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이웃,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된 자들은 서로가 결코 남일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서로가 깊은 사랑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 사랑을 품고 서로가 인사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서로가 불편한 감정을 가진다면 주님의 교회가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교회 안에서의 생활이 즐거울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교회 안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베드로는 모든 성도들을 향해 평강이 있기를 소망하며 끌을 맺습니다. 그의 바라는 바와 같이 우리의 삶에도 주님의 평강이 넘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