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3:9)
율법의 원칙은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으라는 것입니다. 그 까닭의 세상의 모든 법들도 이 원칙 아래 만들어졌습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한시적인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에게 적용된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 그들을 지배해 왔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로 이 법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분께서 오셨으므로 그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율법은 지금도 살아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만들어 주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으로서 친히 어린 양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희생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율법이 역할을 다하고 난 후에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기초는 바로 첫째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음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내용이 비교적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면 예수님의 계명은 다소 포괄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율법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해 통치하고 다스리셨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일정한 법을 정하실 필요가 있었지만 신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직접 다스리시기 때문에 사실상 구체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신약시대의 성도들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렇다면 율법과 복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매우 명확하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율법은 사람들 사이에서 질서를 유지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면 복음은 세상과의 분리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분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세상과 결별해서 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 가운데 머물러 있되 그들이 사는 삶의 방식과 같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생활권은 결코 이 땅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 백성입니다. 그 까닭에 우리는 장차 다가 올 세상을 준비하고 그분께 받을 상을 얻기 위해 준비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세상 사람들과 분리한다는 것입니까? 악을 악으로 욕설을 욕설로 갚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속성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향해 악하게 대하고 욕설을 하는 자들에 대하여 축복하는 것이 바로 분리된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분리는 자신들만의 교리로 남들을 경계하고, 그들을 판단하며, 그들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행하는 일들에 대하여 주님의 방법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방법은 언제나 사랑으로 품어 주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드리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저주하는 자들에 대하여 축복하는 모습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기도 하며, 장차 상속을 받게 되는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의 현재 모습은 어떻습니까? 장차 주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 수 있는 기회를 얻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