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고난을 당하고 참는 것 바로 그 일을 위해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고난을 받는 삶을 사는 것보다 매사에 형통한 삶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종교가 가지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모든 일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병이 들면 종교에 기대어 낳기를 구하고, 가난하면 부자가 되기 위해 돈을 구하게 되고, 심지어 자신의 명예나 권세를 위해 종교의 힘을 빌리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병 낳기를 구해서 나았고, 먹을 것이 없는 자들을 먹이기도 하셨던 장면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예수님의 오신 목적이 단순히 그들에게 기적을 보이시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오신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답은 바로 죽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수차례에 걸쳐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하시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베드로는 결코 죽으실 수 없노라고 붙들기도 했으며, 실제로 돌아가시는 상황이 발생되었을 때,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자신의 직업을 찾아 떠나갔습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죽으심을 바라보며 경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사실 우리의 모습도 제자들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는 순간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핍박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신변에 고난의 시간들과 고통스러운 일들에 대하여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고난을 피하고, 적당히 구원의 대열에 합류하여 천국의 영광을 맛보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고난의 길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주는 의미는 단순히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본을 보이신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그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고난당하심은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수없이 매를 맞고 풍랑의 위험을 지나 감옥에 갇혔고, 심지어 그리스도로 인하여 죽음을 당하는 순간에도 그 길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야고보와 스데반도 자신들의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베드로 역시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도 그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고난을 당하는 동안 행복했고, 오히려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