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전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 집에서 나와 내개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넥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하리니 네가 복이 되리라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리니 네 안에서 땅의 모든 가족이 복을 받으리라 하셨더라(창세기12:1-3)
아브람이라는 이름의 뜻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는 그의 이름에 걸맞게 믿음의 조상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완수했고, 비록 그의 전 인생이 모험과도 같았지만 그는 자신의 믿음을 주님 앞에 드러냄으로서 후손들에게 좋은 본을 보였던 자입니다. 물론 그의 인생에 있어서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많은 실수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의 인생이 주님 앞에 어떠한 모습으로 서야 하는지를 보여주었고, 주님으로부터도 인정받는 위대한 생애를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인생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시행착오
누구에게나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과정에는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는 자들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까닭에 작은 죄 하나를 두고 주님 앞에 나가기를 두려워하고, 심지어는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이러한 자들에게 큰 용기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누구보다도 많은 시행착오를 통하여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온 자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그의 친족과 아버지 집에서 나와 지시할 땅으로 가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아버지 데라와 그의 동생 하란의 아들 조카 롯을 데리고 그곳을 떠났고, 아버지 데라가 하란 땅에서 죽기까지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을 밟을 수가 없었습니다(창11:27-32). 그의 조카 롯은 어떻습니까? 그는 이집트에서 나온 이후로 가축과 금과 은이 풍부해지게 되자 목자들의 다툼으로 인하여 결국 재산을 분배하고 땅을 나누었고, 후에는 롯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이후에 그의 딸들과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았고(모압,암몬), 그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이었던 이삭의 후손(이스라엘)과 영원한 원수의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시행착오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두 차례에 걸쳐서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데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창12:13,20:2).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녀를 통해 자식을 주실 것을 말씀하신 적이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그녀를 파라오(바로)와 아비멜렉에게 아내로 주는 실수를 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개입으로 무사히 그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을 그르칠 수 있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의 실수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약속을 받은 이후로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자 사라의 몸종인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창16:15-16). 분명한 약속이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사람의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아내가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을 하고 그의 아내가 권한대로 그녀의 몸종 사이에서 자식을 낳음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스마엘의 자손들은 오랜 역사가 흐른 지금까지 서로 원수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시행착오에 대하여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물론 당사자인 아브라함에 대해서는 용서하셨지만 그의 후손들은 그 댓가를 치루어야만 했습니다. 시행착오는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지만 불순종으로 인한, 그리고 육신적인 생각과 정욕으로 인한 결과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하셨던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해서도 안 되겠지만 매사에 주님의 뜻을 바로 알고 행하는 신중함도 잃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아브라함에게 많은 문제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자만 여전히 그의 믿음은 위대합니다. 그의 부르심은 75세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그가 인생의 새로운 모험을 하기에는 결코 젊은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새로운 인생을 위한 발을 내딛었고, 인생의 모험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는 많은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매우 대조가 되는 행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믿음의 초기에 보여준 하나님에 대한 경배의 자세는 매우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주변 민족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이후 살렘왕이었던 멜기세덱에게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림으로서 자신의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창14:9-20). 그것은 단순히 소득을 드리는 차원을 넘어 그의 후손들에게 큰 복을 가져다 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멜기세덱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히7:1). 그는 하나님께 복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믿음이 돋보였던 것은 역시 그의 나이 100세 때에 이삭을 낳은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그의 아내가 아들을 낳으리라는 약속을 받은 이후로 웃었던 것(창18:12)과 대조적으로 아브라함은 이 사실을 믿었고, 결국 태가 끊긴 사라의 몸으로부터 이삭이 탄생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결과였고,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지키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은 이삭을 낳았던 사실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삭을 재물로 드리라는 명령에 대하여 순순히 응답했고, 결국 이 시험을 통과함으로서 믿음을 인정받게 되었던 것입니다(창22:1-19,히11:17,약2:21). 어렵게 얻을 아들이었지만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결국 다시 주님께 드려야만 한다는 믿음이 그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 일 후에 하나님의 벗이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약2:23). 물론 아브라함이 이삭을 재물로 드린 것이 영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사건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믿음을 하나님께 보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은 이후에 다시 아내(그두라)를 얻어 여섯 명의 아들을 낳았지만(창25:1-4), 그들에게는 자신의 소유를 물려지지 않고 오직 이삭에게만 상속을 함으로서 자신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이 모든 소유가 약속된 자녀인 이삭에게만 자격이 있다는 믿음을 보임으로서 그의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아브라함은 오늘날 믿음의 삶을 사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많은 실수가 있으며, 또한 말씀 안에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을 보면서 오늘 나의 인생이 어떻게 순종하며 살아야 할지를 생각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