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노아라는 이름은 “위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창5:29). 그가 오늘날 매우 중요한 인물로 여겨지는 것은 성경 안에서 인류의 멸망을 경험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과 같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온갖 죄악이 만연하고 있는 세대를 보면서 사람들은 세상이 멸망하게 될 징조들을 보고 있으며, 노아는 이러한 세대 속에서 우리의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추측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이미 노아의 날들과 비교하여 주님의 날, 즉 멸망의 말에 대하여 경고하셨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눅17:26~27)
만일 우리가 노아를 단순히 성경 속에 있는 한 인물로만 평가를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놓치는 결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의 모습은 장차 구원에 이를 자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야하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구원을 위해서 어떠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입니까?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6:9)
성경은 그가 의인이며, 자기 세대에서 완전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의인이라는 말이 착하고 선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의인은 말 그대로 옳은 일을 알고 행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언제나 옳은 일들을 위해서 수고하는 자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는 자기 세대에서 완전한 자라는 평가를 얻은 자입니다. 한 마디로 그의 삶은 온전함 그 자체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하여 더욱 잘 말하고 있는 부분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그의 동행은 분명히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죄에 익숙해져 있었고, 누구도 하나님을 기억하려 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일로 인하여 사람들로부터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았을 것이며, 오히려 조롱거리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언제나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었고,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모든 관심을 가지고 행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노아를 통하여 모든 일에 분명하게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말씀하실 것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창6:14~16)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배를 만드는데 있어서 정확한 규격을 정하여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노아는 오직 그것을 만들기만 하도록 명령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일을 행하심에 있어서 결코 순간적인 감정에 의하여 결정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매우 치밀하고, 철저한 준비 속에서 사람들에게 명령하시고, 진행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일들에 대하여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사람들을 죄와 심판으로부터 건지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고, 그 일들은 철저한 계획 속에 진행되어 결국 십자가에서 완성시키셨던 것입니다. 앞으로 오실 예수님께서도 이미 성경에 예언된 그대로 오실 것입니다. 성경은 이미 그분께서 어떻게 오실 것이라는 것을 매우 상세하게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집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다면 왜 노아의 시대 사람들이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이러한 처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6:11~13)
부패와 폭력, 그것은 멸망을 앞 둔 인류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왜 부패와 폭력이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만드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것인 그들의 육체를 함부로 파괴시키고, 또한 다른 사람들, 즉 피조 되어진 자들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폭력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점차 부패되어지고 있고, 테러와 전쟁으로 사람들은 살인의 미치광이가 되어가고 있는 세대가 바로 지금 이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이미 경고하고 계시며, 곧 그분의 약속을 따라 심판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창6:18~20)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의 관계를 맺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받을 자들을 방주로 들여보내도록 명령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약속은 오늘날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심판으로부터 건져냄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이 있다면 바로 노아와 같은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6:22)
노아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들에 대하여 다 행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들을 지킴으로서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가 이 명령을 지키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많은 아픔들을 이겨내야만 했습니다. 그가 방주를 짓는 기간은 120년이었습니다. 이일들을 순종하는 동안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놀렸을 것이고, 그는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의 모욕과 수치스러움을 견뎌내야만 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시간동안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그 일을 순종하는 일에 모든 힘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결국 이 땅은 심판을 받게 되었으며 40일 동안 비가 내리고 약 1년 10일 정도를 방주 안에서 생활을 했던 그는 방주에서 나와 구원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창9:13)
하나님은 노아에게 무지개를 증표로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시 이 땅을 물로 심판하시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했습니다. 구원 받은 노아에게 두려움을 없애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그는 결코 멸망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 소망의 말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죄로부터 구원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안전합니다. 어떤 이들은 비록 구원을 받았어도 죄를 지으면 심판, 즉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도록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약속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주님의 손에 의한 구원의 안전을 믿고, 신실한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