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하여 어떻게든 성경 안에서 자신이 변명할 구실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분명하게 “속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저지르는 잘못에 대하여 어떠한 모양이든지 변명할 수 없음을 경고하고 있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죄와 관련된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야고보는 그 이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로는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완전함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좋고, 완전한 선물을 공급해 주시며, 하나님의 속성 자체가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공급이 우리 안에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지속해서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내면이 주님의 공급을 소화해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아직도 내 안에서 자아가 여전히 주인 노릇을 하고 주님의 공급하심을 거부하며, 여전히 죄의 속성을 따라 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릇이 채워져 있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것도 채워 넣을 수 없습니다. 빈 그릇으로 만들어 놓지 않는다면 그 안에 어떠한 것도 담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들을 내버리고 빈 마음, 혹은 가난한 마음이 되어서 주님의 공급하심으로 채워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고 완전한 선물을 공급받음으로써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을 범하지 않는, 즉 죄 가운데 살지 않는 삶을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그 자리에 주님이 주시는 선하고 완전한 선물로 채워야만 합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교리적으로 매우 복잡하게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이 말씀의 의미는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주님 자신이 거룩한 삶의 모범을 보이신 분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그 열매를 맺기 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주님께서는 죄와 상관없이 거룩한 생애를 사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한 희생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분이십니다. 이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희생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구원하심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주님을 닮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잘못을 저지르며 죄 가운데 살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희생을 헛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구원의 감격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거룩한 삶을 사는 일에는 소홀히 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그것은 주님의 구원하심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지금도 경고하고 계십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만일 우리가 여전히 잘못을 번하고 있다면 성경의 준엄한 명령에 불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된다면 신실한 삶을 위해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노력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공급을 통해 이루어짐을 기억하십시오. 그 일을 위해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오직 주님이 주신 선물로 채워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