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55
만일 숨어서 기다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그 사람의 손에 넘겨준 것이면 내가 네게 한 곳을 정하여 주리니 그가 거기로 도망할 것이니라(13)
하나님은 아무런 원한이나 감정도 없으면서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위해 복수를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 도피성을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성을 만든 더욱 큰 이유는 구원에 대한 말씀을 하시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죄인이 아닌 자는 도피성에 찾아 올 이유가 없습니다. 오직 죄인만이 그곳에 와서 자신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걸할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위한 조건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 믿음은 결코 조건이나 환경을 요구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믿음을 쉽게 얻을 수 없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인 아닌 자가 결코 도피성에 올 이유가 없듯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자가 결코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눅5:31-32). 예수님께서도 이 문제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도피성의 지도자들은 살인한 죄인들을 성안으로 받아들이고, 그가 있을 곳을 마련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복수하는 자가 그곳까지 따라와 그를 내어 달라고 하더라도 결코 내어 주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즉 도피성 안에서는 죄인의 생명이 철저하게 보호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도피성이 얼마나 동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앞에 오는 자를 영접하시고 결코 내어쫓지 않으시는 분입니다(요6:37,요10:28). 우리가 세상에서 생명을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뿐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세상은 결코 우리를 빼앗아 갈 수 없을 것입니다(롬8:38-39). 세상에서 우리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죄인이 도피성 안에 갇혀 있는 기간은 대제사장이 죽는 기간까지입니다. 만일 그가 대제사장이 죽기 이전에 성을 빠져나가게 되면 그의 생명은 더 이상 보호받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못하고 이탈하게 된다면 그의 생명은 더 이상 생명을 보호받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는 단번 속죄에 집착한 나머지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논리로 비록 신앙생활을 하다가 타락했다 하더라도 구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를 위해 죽으신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사망의 위험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죄인의 삶의 완전한 해결은 대제사장이 죽음으로서 완성되었습니다. 그의 죄의 고백을 듣고, 보호해 주던 대제사장의 죽음과 더불어 그의 모든 죄와 허물은 없어진 것입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도피성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유인에 되어 죽음으로부터 지켜진 생명에 대한 감사를 하며 하루하루를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진정한 기쁨과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더불어 죽어지는 삶이 있기 전까지는 결코 참된 만족과 안식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갈2:20).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서 우리의 생명이 멸망으로부터 영원히 보호받으며 매일의 삶이 기쁨과 감사, 그리고 참된 안식이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원한이나 감정도 없으면서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위해 복수를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 도피성을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성을 만든 더욱 큰 이유는 구원에 대한 말씀을 하시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죄인이 아닌 자는 도피성에 찾아 올 이유가 없습니다. 오직 죄인만이 그곳에 와서 자신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걸할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위한 조건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 믿음은 결코 조건이나 환경을 요구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믿음을 쉽게 얻을 수 없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인 아닌 자가 결코 도피성에 올 이유가 없듯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자가 결코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눅5:31-32). 예수님께서도 이 문제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도피성의 지도자들은 살인한 죄인들을 성안으로 받아들이고, 그가 있을 곳을 마련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복수하는 자가 그곳까지 따라와 그를 내어 달라고 하더라도 결코 내어 주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즉 도피성 안에서는 죄인의 생명이 철저하게 보호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도피성이 얼마나 동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앞에 오는 자를 영접하시고 결코 내어쫓지 않으시는 분입니다(요6:37,요10:28). 우리가 세상에서 생명을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뿐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세상은 결코 우리를 빼앗아 갈 수 없을 것입니다(롬8:38-39). 세상에서 우리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죄인이 도피성 안에 갇혀 있는 기간은 대제사장이 죽는 기간까지입니다. 만일 그가 대제사장이 죽기 이전에 성을 빠져나가게 되면 그의 생명은 더 이상 보호받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못하고 이탈하게 된다면 그의 생명은 더 이상 생명을 보호받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는 단번 속죄에 집착한 나머지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논리로 비록 신앙생활을 하다가 타락했다 하더라도 구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를 위해 죽으신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사망의 위험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죄인의 삶의 완전한 해결은 대제사장이 죽음으로서 완성되었습니다. 그의 죄의 고백을 듣고, 보호해 주던 대제사장의 죽음과 더불어 그의 모든 죄와 허물은 없어진 것입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도피성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유인에 되어 죽음으로부터 지켜진 생명에 대한 감사를 하며 하루하루를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진정한 기쁨과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더불어 죽어지는 삶이 있기 전까지는 결코 참된 만족과 안식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갈2:20).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서 우리의 생명이 멸망으로부터 영원히 보호받으며 매일의 삶이 기쁨과 감사, 그리고 참된 안식이 있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