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55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은 이 시대에 있어서 특히 강조되어야 할 것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전략 무기 중에서 매우 강력한 것이며, 특히 오늘날에는 청년이나 장년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약보다 심각해서 한 번 무너지면 빠져나오기가 힘들며, 평생의 짐으로 남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처음부터 조심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르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약 성경 안에서도 많은 부분에 걸쳐서 이 간음으로 인하여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령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강간함으로 우리야를 살인하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으며, 야곱의 장자였던 르우벤은 그의 양어머니와 동침을 함으로 장자의 명분을 잃었고, 넷째 아들이었던 유다는 그의 며느리와 동침을 하여 아들을 낳기도 했으며, 모세 역시 이디오피아 여인과 동침을 함으로서 가족과 백성들의 원망을 사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애자들로 가득찬 도시로 천사들을 범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면서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도시를 완전히 멸하시기도 한 사건이 기록되어져 있기도 합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특히 고린도 교회와 같은 곳에서는 자기 어머니를 아내로 취하면서도 우쭐대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성적 타락이 극에 달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고전5:1,2). 이러한 현상은 결코 고린도 교회뿐만이 아니라 바울의 서신에서 모든 교회들마다 성적타락을 경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위험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결혼을 귀하게 여기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침소를 더럽히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습니다.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히13:4). 간음은 실제로 결혼을 한 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결혼을 하고도 다른 이성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죄의 대한 대가를 요구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이 간음에 대하여 그처럼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인 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물론 간음은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로부터 덕을 세우지 못해서 결국에는 주님의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영적 간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과 벗을 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약4:4). 주님이 이토록 간음에 대하여 예민하게 지적하시는 이유는 바로 그분께서 장차 신랑이 되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분과 정혼한 사이입니다. 유대인의 관례에 따르면 정혼은 이미 혼인과 다름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장차 그분과 더불어 혼인 잔치를 치루게 될 것입니다(계19:7,9). 그런데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정혼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과 벗을 삼고 세상과 더불어 간음을 행한다면 자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눈에 거스르게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정결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신부를 맞이하려는 신랑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서 여전히 간음 중에 있는 자들조차도 구원하시겠다는 의지를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또한 자신이 장차 그리스도와 더불어 혼인자리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성도라면 결코 간음을 행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주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보존되며, 또한 삶의 모양들도 주님 앞에 칭찬 받는 자의 모습으로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구약 성경 안에서도 많은 부분에 걸쳐서 이 간음으로 인하여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령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강간함으로 우리야를 살인하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으며, 야곱의 장자였던 르우벤은 그의 양어머니와 동침을 함으로 장자의 명분을 잃었고, 넷째 아들이었던 유다는 그의 며느리와 동침을 하여 아들을 낳기도 했으며, 모세 역시 이디오피아 여인과 동침을 함으로서 가족과 백성들의 원망을 사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애자들로 가득찬 도시로 천사들을 범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면서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도시를 완전히 멸하시기도 한 사건이 기록되어져 있기도 합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특히 고린도 교회와 같은 곳에서는 자기 어머니를 아내로 취하면서도 우쭐대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성적 타락이 극에 달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고전5:1,2). 이러한 현상은 결코 고린도 교회뿐만이 아니라 바울의 서신에서 모든 교회들마다 성적타락을 경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위험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결혼을 귀하게 여기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침소를 더럽히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습니다.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히13:4). 간음은 실제로 결혼을 한 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결혼을 하고도 다른 이성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죄의 대한 대가를 요구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이 간음에 대하여 그처럼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인 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물론 간음은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로부터 덕을 세우지 못해서 결국에는 주님의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영적 간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과 벗을 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약4:4). 주님이 이토록 간음에 대하여 예민하게 지적하시는 이유는 바로 그분께서 장차 신랑이 되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분과 정혼한 사이입니다. 유대인의 관례에 따르면 정혼은 이미 혼인과 다름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장차 그분과 더불어 혼인 잔치를 치루게 될 것입니다(계19:7,9). 그런데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정혼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과 벗을 삼고 세상과 더불어 간음을 행한다면 자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눈에 거스르게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정결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신부를 맞이하려는 신랑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서 여전히 간음 중에 있는 자들조차도 구원하시겠다는 의지를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또한 자신이 장차 그리스도와 더불어 혼인자리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성도라면 결코 간음을 행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주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보존되며, 또한 삶의 모양들도 주님 앞에 칭찬 받는 자의 모습으로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