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를 위하여 어떤 새긴 형상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4,5a)
어떤 사람들이 십계명 가운데 이것만은 빼버리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들은 너무도 많은 형상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십자가나 물고기, 비둘기, 예수님의 초상화 등 너무도 많은 형상들을 집안과 예배당 곳곳에 설치해 두고서 그것을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의 상징물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에 성경을 가지고 있다는 카톨릭 교회와 같은 곳에서는 이 계명을 삭제해 버리고 제10계로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는 계명을 추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너무도 많은 형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마리아를 비롯한 여러 개의 동상들과 천사들, 그리고 상징이 될만한 모든 형상들을 만들어서 그것에게 경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 이러한 현상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기 위해 각종 상징물들을 만들어 집안 곳곳에 설치해 두려 하고 있으며, 심지어 교회들조차도 자신들의 교회에 맞는 이미지를 로고로 제작하여 교패를 만들어 각 가정의 대문에 붙이도록 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이라는 것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칭찬을 받을 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이렇게 자그마한 형상에 대하여 우상화한다는데 있습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어떤 이들은 이 교회의 이미지가 담겨있는 교패 하나가 자신들을 마귀들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들은 한국인들에게는 특별한 것인데, 그들은 과거에 귀신(마귀)을 쫒아 내기 위해 부적을 붙인 적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명백한 우상숭배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러한 외적 형상만이 경계해야 하는 대상일까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외적 형상들에 대하여는 매우 잘 반응합니다. 그들은 형상을 두는 것이 비성경적이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 모두 정리해서 불에 태우거나 버리는 결단을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문제는 내면에 만들어진 우상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더욱 심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탐욕은 우상숭배니라"(골3:5) 그것들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보이는 것들은 용서하실 수 없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성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질투하는 하나님"(5)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만일 우리의 내면에 하나님보다도 자신의 욕심을 따라 만들어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들인 것입니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니라"(고전4:4) 그분은 약2000년 전에는 보이는 형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분이시지만 지금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분이 있다면 오직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형상도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서게 해 줄 것입니다. 그분은 그림이나 형상 속에 계시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과 더불어 있으며, 혹 내면에 모셔들이지 않은 자들이 있다면 계속해서 그들의 마음을 두드리며, 그들의 안으로 들어가시기를 원하시고 계신 분이십니다. 지금 당신 속에는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