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에게 명하라 그들이 자세히 보려고 돌파하여 주께로 오다가 그 중에 많은 사람이 죽을까 염려하노라(21)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는 죄를 보실 수도 없으실 정도로 매우 민감한 분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사야는 하나님을 본 순간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사6:5)라고 말했을 정도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매우 예민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보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백성들에 대하여 책망과 심판만을 행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매우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고민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하나라도 하나님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죽는 사람이 있어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또 다른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만드신 사람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비록 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는 했지만, 그리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올 수는 없지만 여전히 그들 중 하나라도 사망에 이르기를 원치 않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디신 것이 아니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베드로후서3:9)
주님의 사람들을 향한 마음은 구약시대에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단 한 사람이라도 멸망에 이르기를 원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가끔 주님의 심판을 경고하며, 사람들을 공포 가운데 몰아넣은 거짓 전도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방법으로 많은 이들을 현혹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에게 이러한 속성만을 강조한다면 우리는 곧 숨이 막혀 죽게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죄의 문제에 대하여 하루라도 편한 날이 없이 괴로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자유를 얻으며, 진리 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주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혹시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인하여 죽을 자들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모세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당부하도록 명령하셨듯이 주님은 오늘날 우리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한 듣지 못해서 사망에 이르는 자들이 있을 것을 염려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그들이 어찌 선포하리요 이것은 기록된 바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며 좋은 일들의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함과 같으니라(로마서10:15)
우리는 복음 전도자들이 주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 시대의 많은 거짓 복음 전도자들이 스스로 전도자가 된 것과는 분명한 구별을 해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주님은 그분의 일을 대신하여 많은 복음 전도자를 부르시고 또한 보내셨습니다. 그들의 소명은 분명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에 이르기 위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발걸음을 가리켜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주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많은 복음 전도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 주님의 뜻을 전할 것입니다. 그것은 단 한 사람이라도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복음입니다. 주님의 염려를 알고 그분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