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하니(25)
파라오는 파리 떼의 재앙이 있자 모세에게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그가 제시한 첫 번째 타협안은 이 땅에서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을 인정하겠다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파라오에게 있어서 이것은 놀라운 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가 신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의 이러한 결단은 실로 파격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보면서 감히 자신의 의지를 고집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모세가 파라오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그 거절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가 그 땅에서는 드릴 수 없다는 것은 세상과의 분리를 가르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집트 땅은 어떠한 나라보다도 많은 우상들이 모여있는 곳이었습니다. 만일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을 하게된다면 아마도 이집트 사람들은 많은 신들 가운데 한 명쯤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사탄은 지금도 이러한 제안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적당히 타협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들은 과거 유교적인 방식을 따라 드리는 제사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만 안 하면 되지 제사를 드리는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는 식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성경의 어느 곳에 술을 먹지말고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말이 있느냐?"며 과거의 습관들을 버리지 말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 같은 예들은 대표적인 것들 가운데 하나이지만 사탄은 많은 방법들을 동원하여 우리가 과거의 시간과 자리들로부터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빠져나와야만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것 같이 세상으로부터 나오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 되기 위해서 세상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을 봅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 자들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술도 마실 줄 알아야 하고, 철학을 하는 자들에게는 철학적인 접근을 통하여 전도를 하고, 심지어 창녀들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하룻밤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등의 괘변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말이 듣기에는 그럴 듯 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분리된 삶, 즉 거룩한 삶의 모범들을 통하여 소금이 되라는 것이지 그들과 섞여서 살라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짝이 맞지 않는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의가 어찌 사귀겠으며 빛과 어둠이 어찌 친교를 나누겠으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일치하겠으며 혹은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어찌 한 몫을 나누겠으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조화를 이루겠느냐 ......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와 스스로 분리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고린도후서6:14-17)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가 더 이상 그들이 머물러 있을 곳도 아니며, 약속된 땅도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 받은 땅인 가나안으로 가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이 땅은 더 이상 우리가 머물러 있을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장차 주님이 주시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땅에 머물면서 적당히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언젠가 큰 낭패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부디 이 땅에서의 소망을 뒤로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을 땅을 향해 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