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유다의 왕(3) 아사

조회 수 0 추천 수 0 2026.09.20 08:29:56

남 유다의 왕(3) 아사

 

평안할 때 하나님을 찾고 끝까지 의지하라 아사의 믿음과 마지막 시험

 

본문: 열왕기상 15924, 역대하 1416

 

핵심 말씀: 역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1. 무너진 신앙의 땅에서 왕이 된 아사

 

아사는 르호보암과 아비야를 이어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의 시대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가 어떤 나라를 물려받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아사가 왕위에 올랐을 때 유다는 정치적으로도 불안했고 영적으로도 심각하게 병들어 있었습니다. 솔로몬 이후 나라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졌고, 르호보암 시대에는 애굽 왕 시삭의 침공까지 받아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빼앗겼습니다. 북쪽에서는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워 백성들을 우상숭배로 이끌었고, 남유다라고 해서 신앙적으로 안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열왕기상 14장은 유다 백성들이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우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행위를 따라갔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아사가 물려받은 것은 다윗의 왕좌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전 세대가 남겨 놓은 영적인 문제까지 함께 물려받았습니다. 성전은 있었지만 성전 신앙이 약해졌고, 제사장은 있었지만 백성들의 마음은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흔들렸으며, 다윗의 후손이 왕위에 앉아 있었지만 백성의 삶 속에는 가나안의 문화가 깊숙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아사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사에 대해 매우 중요한 평가를 내립니다. 열왕기상 1511절입니다.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그의 아버지 아비야에 대해서는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않았다고 기록했는데, 그 아들 아사에게서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부모 세대가 잘못했다고 자녀 세대까지 반드시 잘못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선 세대가 영적으로 실패했더라도 다음 세대에서 믿음의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가정에 오래된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한 사람이 결단하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2.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께 돌아가게 한 개혁의 왕

 

아사가 왕이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신앙개혁이었습니다. 역대하 142절은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이어서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에게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으며 율법과 명령을 행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여기서 아사의 개혁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우상을 없애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했습니다. 참된 개혁은 잘못된 것을 제거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다시 중심에 모시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우상을 버리는 것과 하나님을 찾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음에서 하나님 아닌 것을 내려놓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사는 먼저 우상을 제거하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찾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아사의 개혁은 자기 집안까지 향했습니다. 그의 할머니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들자 아사는 태후의 자리에서 폐위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습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우상을 제거하는 것은 쉬워도 자기 가족의 우상을 건드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인간관계를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열왕기상은 동시에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고 기록합니다. 역대하에서는 아사가 여러 산당을 제거했다고 기록하면서도 후반부에는 산당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를 함께 보면 아사의 개혁은 매우 광범위했지만 유다 전역의 모든 산당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그의 마음이 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했다고 평가합니다. 이것은 아사가 완벽한 사람이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의 삶의 기본적인 방향이 하나님을 향해 있었다는 뜻입니다.

 

3. 평안할 때 하나님을 찾은 아사

 

아사의 초기 통치에는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셨습니다. 역대하 14장은 여러 해 동안 전쟁이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아사의 위대한 점은 평안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평안할 때 성읍을 건축하고 성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며 나라를 준비했습니다.

 

아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안할 때 하나님을 찾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어려울 때는 기도합니다. 병들면 기도하고, 사업이 어려우면 기도하고,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면 기도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해결되면 기도가 줄어듭니다. 이것이 우리의 약점입니다.

 

평안은 신앙의 휴식기가 아니라 다음 사명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셨다면 건강할 때 섬겨야 합니다. 시간이 있다면 시간이 있을 때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교회가 평안하다면 평안할 때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선교를 준비하며 말씀의 기초를 든든히 세워야 합니다.

 

4. 구스의 백만 대군 앞에서 하나님만 의지한 아사

 

그러나 평안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구스 사람 세라가 엄청난 군대를 이끌고 유다를 공격해 왔습니다. 역대하 14장은 그 군대를 백만 명과 병거 삼백 대로 묘사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아사가 감당할 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아사의 진짜 믿음이 나타납니다. 아사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이 기도는 아사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그는 군대의 숫자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자기 힘과 상대의 힘을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적군을 비교했습니다.

 

신앙은 나와 문제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문제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나와 문제를 비교하면 문제가 커 보이지만, 하나님과 문제를 비교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알게 됩니다.

 

아사는 우리가 강하니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약함을 인정했습니다.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자신의 약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약함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5. 승리한 뒤 찾아오신 하나님과 두 번째 신앙개혁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사를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아사랴를 통해 만나주셨습니다. 선지자는 아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아사는 이 말씀을 듣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대대적인 신앙개혁을 시작합니다. 우상을 제거하고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보수하며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기로 언약을 맺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아사가 승리한 다음에도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실패했을 때보다 성공했을 때 말씀을 듣기가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실패하면 겸손해지지만 성공하면 자기 확신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때의 아사는 선지자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백성들도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시므온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아사에게로 왔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사와 함께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6. 믿음으로 시작한 사람이 사람을 의지하기 시작하다

 

아사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의 생애 후반부에 매우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압박하며 라마를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아사에게 큰 위협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아사는 백만 대군 앞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당연히 하나님께 기도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사는 성전과 왕궁의 은과 금을 가져다가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과의 동맹을 깨고 자신과 동맹을 맺어달라고 요청합니다. 벤하닷은 아사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북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바아사는 라마 건축을 중단했고 아사의 계획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성공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사의 외교 전략은 성공했습니다. 위기는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선견자 하나니가 아사에게 찾아와 말합니다.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그리고 과거를 상기시킵니다. 구스의 거대한 군대가 왔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는데 왜 이제는 사람을 의지하느냐는 것입니다.

 

7. 하나님의 책망 앞에서 마음이 굳어지기 시작한 아사

 

하나니 선견자가 아사의 잘못을 지적했을 때 아사는 분노했습니다. 역대하 1610절은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라고 기록합니다. 더 나아가 백성 중 몇 사람을 학대했습니다.

 

이 장면은 젊은 시절의 아사와 너무나 다릅니다. 예전에는 아사랴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용기를 내어 개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니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화를 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선지자의 역할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한 것은 아사의 마음이었습니다.

 

우리 신앙의 건강을 알아보는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는 책망을 받을 때의 태도입니다. 듣기 좋은 말씀을 좋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잘못을 지적하는 말씀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가 죄를 지적했을 때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아사는 선지자를 감옥에 넣었습니다.

 

히브리서 4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고 말씀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죽이려고 찌르는 칼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해 병든 부분을 도려내는 칼입니다.

 

8. 발에 병이 들었으나 하나님보다 의원을 찾은 마지막 모습

 

아사가 왕이 된 지 39년에 그의 발에 심한 병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매우 안타까운 평가를 덧붙입니다. 역대하 1612절입니다.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이 말씀은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잘못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의료 자체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의원을 찾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구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젊은 아사는 백만 대군 앞에서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늙은 아사는 자기 몸의 질병 앞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백만 대군 앞에서는 하나님을 믿었는데 작은 발병 앞에서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문제의 크기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것이 아사의 생애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무거운 경고입니다. 신앙은 과거의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9. 아사의 생애를 통해 배우는 믿음, 시작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전심으로 향하는 것

 

그는 분명 좋은 왕이었습니다. 우상을 제거했습니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찾게 했습니다. 자기 집안의 우상까지 제거했습니다. 구스의 대군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큰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다시 개혁했고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말년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의지했는데 나중에는 아람을 의지했습니다. 처음에는 선지자의 말씀을 들었는데 나중에는 선지자를 감옥에 넣었습니다. 처음에는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는데 마지막에는 병들었을 때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니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아사의 생애 전체를 해석하는 열쇠가 됩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향하는 사람입니다.

 

아사의 젊은 시절에는 그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그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을 바라보면서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마지막입니까. 우리에게도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10. 아사를 넘어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사의 생애를 묵상하면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합니다. 아무리 좋은 왕이라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아사는 좋은 왕이었지만 끝까지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사밧도 완전하지 않았고, 히스기야도 완전하지 않았으며, 요시야도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왕위를 완전하게 이어갈 왕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사는 전쟁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했지만 말년에 사람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마지막 십자가까지 아버지를 의지하셨습니다. 아사는 책망을 받자 분노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 앞에 자신을 온전히 낮추셨습니다. 아사는 자신의 왕국을 지키려고 이방 왕에게 보물을 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아사처럼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아사의 실패를 넘어 완전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2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가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는 힘은 우리의 결심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주어집니다.

 

맺는말 잘 시작한 믿음을 끝까지 지키십시오

 

아사의 생애가 오늘 우리에게 남기는 말씀은 분명합니다. 잘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아사는 하나님을 찾으며 시작했습니다. 우상을 제거했습니다.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었습니다. 백만 대군 앞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사람을 의지했고, 말씀의 책망을 거절했으며, 병들었을 때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이것이어야 합니다.

 

주님, 처음보다 마지막이 더 아름답게 하옵소서.”

 

젊었을 때의 믿음보다 노년의 믿음이 깊어지게 하시고, 처음 사명을 받았을 때의 열정보다 마지막 사명을 감당할 때의 사랑이 더 깊어지게 하시며,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의 감격보다 주님 앞에 설 날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주님을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온 땅을 두루 살피고 계십니다. 능력 있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가진 사람을 찾으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아사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방법보다 기도를 앞세우며, 경험보다 말씀을 붙들고, 평안할 때 더욱 하나님을 찾으며, 위기 때 더욱 하나님께 부르짖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지막 날에 바울과 함께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하며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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