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 너희 조상들의 주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라 이것이 영원토록 나의 이름이요 이것이 모든 세대에 이르는 나의 기념물이니라(15)
주님의 부르심은 분명히 특별한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하고 싶다는 열정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미 과거에 자신이 소명을 받은 자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사람과 이집트 사람이 다툴 때에 이집트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자였습니다. 그는 사람을 죽이면서 자신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으로부터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모세는 분명히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자였습니다. 그는 이집트의 궁궐 안에서 충분한 지도자 교육을 받은 자였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그는 어릴적부터 어머니로부터 히브리인으로서의 민족성을 배웠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구해내야겠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40세라는 나이가 될 때까지 더욱 열심히 백성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힘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지식과 능력을 겸비한 그를 쓰시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제아무리 그가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고자 하였어도 그를 쓰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소명이 우리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육신적인 능력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의 쓰심은 우리의 생각과는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야간 것들을 택하시며 하나님께서 있는 것들을 쓸모 없게 하시려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시고 참으로 없는 것들을 택하셨나니 이는 어떤 육체도 하나님의 눈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1:27-29)
바울의 이 고백은 모세를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식과 능력을 겸비한 모세를 쓰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광야에서 40년 동안에 머물게 하심으로 매우 연약하고 소망이 없어 보이는 모세를 부르셔서 이집트 땅으로 다시 보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이 일이 결코 모세 자신의 일이 아니며,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를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도 동일한 법칙이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지식과 열심을 가지고 있는 바울을 그대로 쓰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존경보다는 많은 핍박을 받아야했고, 육신적으로도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바울 자신도 고백하기를 이러한 약함이 오히려 자신을 강하게 만든다고 고백하고 있었고, 오히려 자신이 가진 지식과 명예, 그리고 자신의 자랑거리들을 모두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고 하는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소명이 우리에게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보내시는 것은 그분의 일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부르심과 보내심은 그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해야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