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3)

 

배신 속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섭리

 

본문: 마태복음 26:14-16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고난주간의 수요일은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한 날입니다. 예수님의 큰 행적이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이 날은 가장 어두운 사건이 진행된 날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가 주님을 배신하기로 결단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짧지만 매우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열둘 중의 하나,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이 주님을 팔기로 결정합니다. 그는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가서 내가 예수를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을 묵상할 때 우리는 깊은 충격을 받습니다. 어떻게 제자가 주님을 팔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우리 마음에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지 유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유다는 특별히 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의 모습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3년을 동행했습니다. 말씀을 들었고, 기적을 보았고, 사역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주님을 떠났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가까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환경이 아니라 중심의 문제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따랐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다른 것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26절 말씀을 보면 유다는 돈궤를 맡고 있었는데 거기서 돈을 훔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물질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의 마음 속에 있던 욕심이 그를 배신의 자리까지 끌고 갔습니다. 그는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은 삼십은 단순한 금액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2132절에 따르면 이것은 노예 한 사람의 값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아들을 노예의 값으로 팔아버린 것입니다.

 

이 장면은 인간의 죄가 얼마나 깊고 어두운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여기서 끝내면 절망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배신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유다의 배신이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신 구원의 역사 안에서 이 일이 진행된 것입니다.

 

이사야 5310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 사건을 통해 인류를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섭리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스리시고,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악함도, 배신도, 고통도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창세기 5020절에서 요셉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요셉은 형들에게 배신당했습니다. 팔려갔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습니다.

 

결국 요셉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질문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도 일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28절 말씀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모든 것에는 좋은 일만 포함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픈 일, 억울한 일, 배신까지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은 그것까지 사용하셔서 선을 이루십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배신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막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십자가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가 우리를 살리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변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억울함을 표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23절 말씀에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도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고난주간은 우리의 억울함을 내려놓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상처를 하나님께 맡기는 시간입니다.

 

혹시 지금 마음 속에 풀리지 않는 일이 있습니까? 아직도 마음을 붙잡고 있는 상처가 있습니까?

 

주님 앞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 내가 이해할 수 없지만 주님을 신뢰합니다.

주님, 내가 아프지만 주님께 맡깁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유다는 결국 절망 가운데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같은 실패를 경험했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돌아갔느냐, 돌아가지 않았느냐의 차이입니다.

 

우리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시 주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돌아오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다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내 삶을 붙들어 주옵소서.

주님, 나의 모든 상황을 사용하여 주옵소서.

주님,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옵소서.”

 

그리할 때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이루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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