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전도서 1:9–10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오늘 우리는 전도자의 두 번째 외침 앞에 서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이 말씀은 우리의 기대를 꺾는 선언처럼 들립니다. 우리는 늘 새 것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정책, 새로운 지도자, 새로운 시대를 꿈꿉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말합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한다고. 세상은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반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것을 봅니다.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하면 또 일어나고, 탐욕은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다시 고개를 듭니다. 인간의 죄성은 시대를 바꿔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창세기 6장 5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홍수 이전의 세상이나 오늘의 세상이나, 인간의 본성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왜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습니까. 그 이유는 인간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는 여전히 존재하고, 욕망은 여전히 인간을 지배합니다. 문명은 발전해도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반복을 말합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합니다. 같은 욕망을 좇고, 같은 허무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절망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근본을 바라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해 아래에 새 것이 없다는 것은, 진짜 새 것은 해 위에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새로움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사야 43장 19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세상은 반복되지만,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변화 속에서도 인간의 고민은 같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인정받고 싶은 욕망, 사랑받고 싶은 갈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시대를 초월합니다. 솔로몬 시대에도, 오늘날에도 사람은 같은 질문을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전도자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세상 안에서 그 답을 찾으려 하지 말라고. 세상은 새 것을 주지 못합니다. 아무리 새로운 것을 손에 넣어도 그것은 잠시뿐입니다. 스마트폰이 새 모델로 바뀌고, 집이 더 커지고, 차가 더 좋아져도 만족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해 아래의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1장 14절에서 전도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우리는 보이지 않는 만족을 붙들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바람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세상의 새로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흥분을 주지만, 결국 또 다른 새로움을 찾게 만듭니다.
이 반복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반복은 우리를 낙심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원을 갈망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해 아래에서 새 것이 없다는 사실은, 해 위의 하나님만이 참된 새로움이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5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세상은 반복하지만, 하나님은 새롭게 하십니다. 죄로 무너진 인간을 거듭나게 하시고, 죽을 몸을 부활의 몸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 피조물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선언합니다.
전도자의 탄식은 결국 복음으로 이어집니다. 해 아래에서는 새 것이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세상은 우리를 반복 속에 가두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의 역사 속으로 부르십니다. 죄와 허무의 반복을 끊으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십니다.
우리가 해 아래의 삶에만 집중하면 인생은 단조롭고 공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반복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합니다.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는 반복 속에서도, 하나님은 매일 새 은혜를 주십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2–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지만, 하나님의 자비는 날마다 새롭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반복 속에서 자랍니다. 예배는 반복되고, 기도는 반복되고, 말씀 묵상은 반복됩니다. 그러나 그 반복은 공허한 순환이 아니라, 영원을 향한 훈련입니다. 세상의 반복은 허무를 낳지만, 믿음의 반복은 성숙을 낳습니다.
우리는 반복되는 세상 속에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반복 속에서 변치 않는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세상은 유행을 바꾸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이사야 40장 8절은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고 선포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혹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기력해지지 않으셨습니까. 매일 같은 자리, 같은 문제, 같은 고민 속에서 지치지 않으셨습니까. 전도자는 말합니다.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다고. 그러나 복음은 말합니다. 하나님 안에는 새로움이 있다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일상의 반복은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매일의 식탁이 감사의 자리로 변하고, 매일의 노동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변합니다. 같은 하루이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하루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세상의 새로움을 좇기보다 하나님의 새로움을 구하십시오. 유행을 따르기보다 말씀을 붙드십시오. 해 아래의 반복 속에서 해 위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하면 반복은 더 이상 지루한 순환이 아니라, 영원으로 향하는 계단이 될 것입니다.
결국 전도자의 외침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끕니다. 해 아래에 새 것이 없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참된 새로움을 갈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갈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세상은 반복되지만, 구원은 단 한 번의 십자가 사건으로 영원을 바꾸었습니다.
오늘도 반복되는 하루를 사시지만, 그 하루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러면 그 하루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반복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해 아래의 세상은 변함없어 보여도, 해 위의 하나님은 지금도 새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이 믿음으로 사시는 모든 성도님들의 삶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은혜의 여정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