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잠언 5장 20절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여인의 품을 안겠느냐”
하나님은 때로 명령으로 말씀하시고, 때로 경고로 말씀하시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질문으로 말씀하십니다. 질문은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생각하게 합니다. 양심을 깨웁니다. 잠언 5장 20절은 단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욕망과 선택, 그리고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어찌하여… 하겠느냐.” 하나님은 이미 결과를 말씀하셨고, 이미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이 질문은 단지 육체적 음행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정하신 언약의 자리를 떠나 다른 곳에서 만족을 찾으려는 모든 시도를 향한 질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주신 자리로는 만족하지 못하는가. 왜 이미 복을 주신 샘을 떠나, 마를 것을 알면서도 다른 우물을 파려 하는가.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으시고 묻습니다.
“어찌하여.” 이 질문 속에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로 몰아넣으려는 분이 아니라, 죄에서 지켜 내시려는 분이십니다. 앞선 구절들에서 하나님은 유혹의 끝을 보여 주셨습니다. 쑥같이 쓰고, 칼같이 날카로운 결과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약 안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고 만족스러운지 보여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른 길을 기웃거리는 인간을 향해 하나님은 묻습니다. “어찌하여.”
이 질문은 단순히 도덕적 규범을 지키지 못한 사람을 향한 책망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불만족과 탐욕의 뿌리를 드러내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보다 더 자극적인 것을 찾으려는 마음이 문제의 시작입니다. 음녀를 연모한다는 것은, 실제 인물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금지된 것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왜곡된 욕망을 상징합니다.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연모한다는 말은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감정을 붙들고 키워 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죄는 갑작스러운 실수로만 시작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서 오래 머물며, 생각으로 반복되고, 감정으로 부풀어 오르다가 결국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행동을 묻기 전에 연모하는 마음을 묻습니다.
“어찌하여 이방 여인의 품을 안겠느냐.” 품을 안는다는 것은 단지 외적인 접촉이 아니라, 의지하고 기대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기대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외로움 속에서, 스트레스 속에서, 상처 속에서 우리는 어디를 찾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마련하신 언약의 자리입니까, 아니면 일시적 위로를 주는 다른 품입니까.
이 질문은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도 울려야 합니다. 왜 우리는 이미 받은 은혜를 충분히 여기지 못하는가. 왜 하나님이 주신 관계보다 자극적인 관계를 상상하는가. 왜 진실한 사랑보다 비밀스러운 관심에 마음이 흔들리는가. 하나님은 죄를 숨기지 말고, 이 질문 앞에 정직히 서라고 하십니다.
죄의 어리석음은 단지 결과가 나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미 좋은 것을 주셨는데도, 더 나은 것을 약속하는 거짓을 믿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랑을 주셨고, 친밀함을 주셨으며,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경계를 넘어야 더 자유로울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경계는 속박이 아니라 보호입니다. 이 질문은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보고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부르시고, 끝까지 묻고, 끝까지 깨우십니다. “어찌하여.” 이 한 마디에는 책망과 동시에 회복의 가능성이 담겨 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아직 돌아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질문을 정직하게 받아야 합니다. 죄를 합리화하지 말고, 환경 탓으로 돌리지 말고, “모두가 그러니까”라는 말로 덮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왜 나는 이 길을 생각하고 있는가. 왜 나는 이 감정을 키우고 있는가. 왜 나는 이미 받은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 서면 우리는 겸손해집니다.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했던 교만이 무너지고, 내 마음의 연약함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유혹을 이기는 힘은 결단만으로 오지 않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이 시간 이후로 우리의 기도가 이렇게 바뀌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죄를 멀리하게 하옵소서”에서 “주님, 제 마음이 왜 흔들리는지 보게 하옵소서.” “주님, 저를 지켜 주옵소서”에서 “주님, 이미 주신 은혜에 만족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질문하시는 분이지만, 동시에 붙드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답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다시 언약의 자리로, 다시 기쁨의 자리로, 다시 정결의 자리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 한 문장의 질문을 통해 성도들의 양심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성령의 조명이 더욱 충만히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이 잘못된 연모 대신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랑을 더욱 깊이 누리는 은혜가 날마다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