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었던 일들을 매듭짓고자 하는 심정으로 분쟁에 관한 이야기를 끝내려고 합니다. 그는 글을 이어가면서 때로는 섭섭하기도 하고, 억울해 하기도 하며, 하소연을 하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말로서 그들의 마음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고린도 교인에 대한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 것입니다.
그는 비록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의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갔던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누구보다도 많은 자녀를 양육하고 있었던 가정의 가장다운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교회를 하나의 가정으로 보았고, 바울 자신은 그 가정에서 아버지로서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달아 알 수 있는 것 같이 교회를 통하여 사랑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을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그가 아버지가 된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너희를 낳았다는 이유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두 번 태어나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번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고, 또 한 번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와서 살아가고 있지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이성끼리 결혼하여 어린아이를 낳을 수 있지만 성령으로 두 번 나게 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자신 있게 말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그의 자녀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낳지 못하는 부부는 항상 불안합니다. 또한 항상 주위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아서 움츠리고 삽니다. 이 부끄러움을 만회하기 위하여 돈, 명예, 권세, 지식 등을 얻어보지만 오히려 허전함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자녀는 가정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에 자녀가 필요한 이유는 사랑을 공급할 대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어딘가 항상 부족함을 가지고 살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외형적으로 볼 때 스승과 제자로서의 고린도 교인들과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스스로가 스승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스승이 되기보다는 아버지로서 고린도 교인들을 대하기를 소원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가 아닌 아버지와 자식 간의 관계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승은 많은 제자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특별한 몇 명의 제자들에게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들을 잘 가르쳐서 훌륭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오히려 미련하고 약한 자녀에게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들이 스스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때까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양은 학교와 같은 교육단위가 아닌 사랑이 있는 가정단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많은 말이 오가는 곳입니다. 마치 말만으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이 하나도 없고, 또한 사역을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대부분이 쉽게 유혹을 당하고 좌절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영적 일에 관하여는 우리의 눈에 띠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외형적인 판단만으로는 믿음의 정도를 말할 수 없으며, 성도의 신앙의 정도를 가늠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말로 그들을 판단하지 않고 능력을 알아보겠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말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인정받으려고 애를 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직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