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3) 예배자의 자세와 태도
우리는 지난 두 주 동안 예배의 근원이 하나님을 아는 데 있음을 보았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는 사실을 깊이 묵상했습니다. 오늘 이 세 번째 시간에는, 그 부르심 앞에 선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태도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가를 함께 살피고자 합니다. 예배는 단지 예배당에 들어오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예배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서는 자리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면서도 예배의 깊이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예배의 순서를 몰라서가 아니라 예배자의 자세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시지만, 동시에 예배자를 바라보시는 분이십니다. 무엇을 드리느냐 이전에,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느냐를 보십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매우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하나님 앞에 선 사람들은 언제나 먼저 자신의 자세를 바꾸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모세의 소명 사건입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가까이 오는 것을 보시고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출애굽기 3:4)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신 후, 곧바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애굽기 3:5)
하나님은 먼저 모세의 태도를 다루십니다. 신을 벗으라는 것은 단순한 행동 지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너는 지금 일상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선언입니다. 예배는 언제나 이 인식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거룩하다는 인식, 이것이 예배자의 첫 번째 자세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당에 들어와 앉아 있는 이 자리는 어떤 자리입니까. 편안한 의자에 앉아 있는 익숙한 공간입니까. 아니면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거룩한 자리입니까. 이 인식의 차이가 예배의 깊이를 완전히 갈라놓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소명 장면도 동일한 진리를 보여 줍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이사야 6:1)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목도한 이사야의 첫 반응은 감동이 아니라 두려움이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이사야 6:5)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인간은 반드시 자기 자신을 보게 됩니다. 예배는 자기 만족의 시간이 아니라 자기 인식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수록,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을 변명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예배를 두렵게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의 입술을 정결하게 하시고, 다시 부르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사야 6:8) 그리고 이사야는 응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8)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거룩하심을 보고 → 자신을 보고 → 은혜를 경험하고 → 다시 서는 것, 이것이 예배자의 바른 태도입니다.
오늘날 많은 예배가 가벼워진 이유는 하나님이 가벼워졌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는 태도가 가벼워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거룩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거룩함을 망각한 채 예배의 자리에 들어온다는 데 있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예배자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전도서 5:1) 이 말씀은 단순히 조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마음을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예배는 준비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몸은 예배당에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세상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배 자리에 앉아 있을 뿐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감사함은 주께서 나를 권고하시며 밤에는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심이라” (시편 16:7)
참된 예배자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열어 놓습니다. 말씀 앞에서 교정받을 준비가 되어 있고, 책망을 들어도 떠나지 않을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배자의 태도는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야고보서 4:6) 예배는 겸손한 자에게 열리는 은혜의 문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마음,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태도, 변화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마음은 예배의 가장 큰 방해물입니다.
예배자의 태도에는 또 하나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경외함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잠언 1:7) 경외는 두려움이지만, 도망치는 두려움이 아니라 머무르게 하는 두려움입니다. 이 경외가 사라질 때 예배는 친숙함만 남고, 거룩함은 사라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친구이시지만, 결코 가벼운 대상은 아니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배의 태도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히브리서 12:28) 예배는 즐거움이지만, 동시에 두려움이 있는 자리입니다. 기쁨과 떨림이 함께 있는 자리,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예배의 자리입니다.
예배자의 태도는 예배당 안에서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예배당에서의 태도는 반드시 삶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은 사람 앞에서도 겸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삶에서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전서 10:31) 이것이 삶의 예배로 이어지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설 때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는가. 나는 예배를 준비하며 오는가, 아니면 예배를 소비하러 오는가. 나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오는가, 아니면 익숙한 종교 활동을 반복하러 오는가.
예배는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마음, 이것이 회복될 때 예배는 다시 살아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십시오. 예배는 형식 이전에 태도이며, 행동 이전에 마음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이 마음이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예배를 다시 새롭게 하는 은혜의 시작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