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2) 예배는 하나님의 초청에 대한 순종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배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 합니다. 우리는 흔히 예배를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예배의 본질은 조금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성경 속에서 예배는 언제나 인간의 자발적 결단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예배는 늘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부르시고, 인간은 그 부르심에 응답함으로 예배자가 되었습니다.

 

예배는 내가 시간을 내서 하나님께 가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주신 자리에 내가 응답하여 서는 사건입니다. 이 관점이 바뀌지 않으면 예배는 쉽게 피곤해지고, 부담이 되며, 때로는 의무가 됩니다. 그러나 예배가 하나님의 초청임을 깨닫는 순간, 예배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것은 부담이 아니라 은혜가 되고, 명령이 아니라 특권이 됩니다.

 

성경의 첫 예배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부르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부르심은 심문이기 이전에 관계의 부르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숨은 인간을 찾으셨고, 그 부르심 앞에 인간은 응답해야 했습니다. 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부르시는 분이셨습니다. 예배는 이 부르심 앞에 다시 서는 행위입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부르실 때 목적지를 먼저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예배자의 삶은 언제나 이 부르심에 대한 신뢰에서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해서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했기에 응답했습니다. 그의 순종이 곧 예배였습니다. 예배는 이해의 결과가 아니라 신뢰의 응답입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예배당에 나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습관입니까, 책임감입니까, 아니면 누군가의 권유입니까. 물론 그 모든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의 가장 깊은 이유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부르신 자만이 설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아무나 드릴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부르심을 받은 자의 특권입니다.

 

출애굽 사건을 묵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예배할 것이니라.” 해방의 목적은 자유 그 자체가 아니라 예배였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위해 백성을 부르셨고, 그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 이스라엘은 광야로 나아갔습니다. 광야는 편안한 곳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기에 그 길은 예배의 길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배를 너무 쉽게 선택의 문제로 만들어 버립니다. “오늘은 예배를 드릴까 말까”,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쉬어야겠다.” 그러나 예배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예배는 선택이 아니라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부르심 앞에서 우리는 늘 , 주님이라고 대답해야 할 자리로 초대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배가 강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억압이 아니라 초청입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끌어오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 초청은 너무도 거룩하고, 너무도 은혜로워서, 그것을 들은 자는 외면할 수 없게 됩니다. 마치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처럼 말입니다. 잔치의 주인은 준비를 마쳤고, 초대장을 보냅니다. 참석 여부는 손님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자리는 이미 주인의 사랑으로 열려 있는 자리입니다. 예배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명령이 아니라 초청이었습니다. 예배는 이 초청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친 영혼을 부르십니다. 상한 마음을 부르십니다. 길을 잃은 자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 앞에 나와라. 내가 너를 만나 주겠다.” 예배는 이 음성을 듣고 나아오는 응답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부르심을 너무 자주 놓친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늘 크고 극적인 방식으로만 들려오지 않습니다. 때로는 말씀 한 구절로, 때로는 찬송 한 소절로, 때로는 마음 깊은 곳의 찔림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그 부르심을 소음처럼 흘려보내곤 합니다. 그래서 예배가 감격이 아니라 반복이 됩니다.

 

예배의 회복은 부르심을 다시 듣는 데서 시작됩니다. “오늘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인식이 회복될 때, 예배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지각하지 않기 위해 서두르는 이유도, 예배 중에 마음을 다잡는 이유도 달라집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 응답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즉각 응답한 사람들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부르심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움직였습니다. 반대로 망설였던 사람들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우선순위가 있었기 때문에 머뭇거렸습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의 우선순위가 무너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보다 다른 소리에 더 민감해집니다.

 

예배는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가, 우리가 누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 줍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매주 이 질문 앞에 섭니다. “나는 누구의 부르심에 가장 먼저 응답하는가.”

 

우리는 다시 결단해야 합니다. 예배를 의무로 여기지 않겠습니다. 예배를 소비하지 않겠습니다. 예배를 평가의 대상으로 삼지 않겠습니다. 대신 예배를 하나님의 거룩한 초청으로 받겠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 앞에 겸손히, 그러나 기쁘게 응답하겠습니다. 이것이 예배자의 첫 번째 자세입니다.

 

이 부르심에 대한 응답은 예배당 안에서만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우리를 부르시고, 다시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예배는 모임이자 파송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모인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상으로 흩어집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삶 전체를 향한 부르심의 시작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의 예배는 더 이상 가벼울 수 없고, 형식일 수 없으며, 습관에 머물 수 없습니다. 예배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 앞에 서는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예배는 내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예배를 다시 살리는 은혜의 씨앗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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