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데서 시작되는 예배

조회 수 276 추천 수 0 2026.01.03 10:36:33

예배(1) 하나님을 아는 데서 시작되는 예배

 

오늘 우리는 예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이 질문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깊이 묻지 않고 지나치기 쉬운 질문입니다. 우리는 평생 예배를 드려 왔다고 말합니다. 주일마다 예배당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는 왜 예배하는가”, “예배의 근원이 무엇인가”, “내가 드리는 이 예배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쉽게 말을 잇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첫 시간, 우리는 예배의 방법보다 먼저 예배의 근원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예배의 형식보다 예배의 뿌리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예배로 시작합니다. 창세기의 첫 장면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과 교제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을 숨기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자신을 알리시는 분이십니다.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올라간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을 드러내시고 부르신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시작점은 인간의 열심이나 정성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계시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예배할 수 없고, 하나님을 오해하면 예배는 왜곡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놓치면 예배는 종교 행위로 전락합니다. 습관이 되고, 의무가 되고, 형식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로 아는 순간, 예배는 전혀 다른 차원이 됩니다. 예배는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서는 떨림이 되고, 은혜의 자리이며, 생명의 만남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어떻게 드릴 것인가보다 먼저 누구를 예배하는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출애굽기의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떨기나무 앞에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내가 누구인가를 밝히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이 자기 계시는 이스라엘 예배의 출발점이 됩니다. 하나님은 먼저 자신을 알리시고, 그 다음에 예배를 요구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예배하라는 명령은 언제나 내가 누구인지 알라는 계시 이후에 옵니다. 예배는 계시에 대한 응답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예배에 지쳐 있는 이유는 예배가 하나님을 아는 자리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지 못한 채, 같은 순서를 반복하고, 같은 노래를 부르고, 같은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결코 머무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예배는 깊어지고, 예배는 넓어지고, 예배는 삶으로 확장됩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성경은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증언합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단지 도덕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으로 전혀 다른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피조물과 비교될 수 없는 분이시며, 우리의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는 언제나 경외가 있어야 합니다. 가벼움이 아니라 두려움이며, 익숙함이 아니라 떨림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본 환상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본 순간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은 자신을 보게 됩니다. 예배는 자기 확신을 강화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기 무너짐이 일어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배는 절망의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의 입술을 정결하게 하시고, 새로운 사명을 맡기십니다. 참된 예배는 항상 변화로 이어집니다.

 

예배의 근원이 하나님을 아는 데 있다면, 예배의 방향 역시 분명해집니다. 예배는 나를 만족시키기 위한 시간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시간입니다. 우리는 종종 예배를 평가합니다. “오늘 예배는 은혜가 있었다, 없었다”, “오늘 찬양이 좋았다, 설교가 좋았다.” 그러나 성경은 예배의 중심에 인간의 느낌을 두지 않습니다. 예배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가 예배의 기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은 이 진리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장소도, 형식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라는 표현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행위이기 이전에, 하나님이 예배자를 찾으시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만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회복은 프로그램의 개선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음향이나 조명, 순서의 변화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예배의 회복은 하나님을 다시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말씀이 살아나야 예배가 살아납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회복될 때, 예배는 자연스럽게 회복됩니다.

 

이제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지는 않습니까. 은혜의 하나님으로만, 축복의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은혜이시며 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심판의 하나님이시며, 거룩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균형이 무너질 때 예배는 한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심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계시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때로 위로를 받고, 때로 책망을 받고, 때로 침묵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감정의 고조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는 전 존재의 반응입니다.

 

12주간의 예배 여정은 우리로 하여금 예배를 다시 배우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예배를 배우는 목적은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예배를 배우는 목적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더 알게 될 때, 우리의 예배는 달라질 것이고, 우리의 삶은 예배가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첫 시간, 우리는 다시 고백합니다. 예배는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만들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만남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히, 떨리는 마음으로, 그러나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서 시작되는 예배가 우리의 교회와 가정과 삶 가운데 깊이 뿌리내리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이 예배가 어떻게 우리의 태도와 말과 기도와 찬양과 삶으로 이어지는지를 차례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여정의 출발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예배의 근원은 하나님을 아는 데 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심령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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