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스라엘의 왕(3) 바아사

조회 수 392 추천 수 0 2025.12.02 10:08:07

심판으로 세워지고 심판으로 무너진 왕 – 바아사의 길”

본문: 열왕기상 15장 27–30절, 16장 1–7절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유다 왕 아사의 제이년에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바아사가 그에게 반역하여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기브돈에서 그를 쳐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아히야를 통하여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졌더라.” (왕상 15:25–29 요약)

“여호와의 말씀이 예후에게 임하여 바아사와 그의 집을 꾸짖으시되… 내가 너를 티끌 가운데서 들어 올려 내 백성 이스라엘 위에 세웠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였다.” (왕상 16:1–2 요약)

북이스라엘의 역사는 여로보암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세우신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는 정치적 불안을 신앙으로 다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세워 백성들의 마음을 묶어두려 했습니다. 그 결과, 북이스라엘은 신앙의 뿌리부터 부패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의 종교 개혁은 겉으로는 “국가 통합”이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대체한 인간 중심의 체계였습니다.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는 단순한 우상이 아니라, ‘편리한 신앙의 상징’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야 할 예배를 이제는 자기 집 가까운 곳에서 드릴 수 있었고,

레위인이 아닌 일반 백성도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신앙의 질서는 무너졌고, 예배는 형식만 남았습니다.


이러한 타락은 단지 한 왕의 잘못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만든 죄의 구조는 나라의 체질이 되었고, 백성들의 신앙을 왜곡시켰습니다. 이제 북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의 나라”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종교국가로 변질되었습니다. 그 한복판에서,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잠시 왕이 되었지만, 그 역시 아버지의 길을 따랐습니다. 그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바아사입니다. 그는 여로보암 가문을 심판하기 위해 세워진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심판의 도구로 쓰임받았지만, 끝내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아사는 잇사갈 지파 출신으로, 평민 출신이었습니다. 그의 가문에는 왕족도, 제사장도, 지도자도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바사의 아들 바아사가 반역하여 나답을 쳐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왕상 15:27) 그는 블레셋 전쟁 중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쿠데타가 아니라, 하나님의 예언 성취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여로보암에게 “너의 집이 다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왕상 14:10). 그 말씀은 바아사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왕상 15:29) 바아사는 하나님의 말씀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의 손에 붙들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사용되었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사람도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그 사람의 구원이나 신앙의 정당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바아사는 하나님께 쓰임받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의 즉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여로보암의 집을 완전히 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여로보암의 후손을 모두 죽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의 죄를 심판하신 예언의 성취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바아사의 마음에는 잔혹함과 피의 정치가 자리 잡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심판’으로 이해했지만, 그 심판을 ‘복수’로 행했습니다.


바아사는 여로보암 왕조를 멸망시켰지만, 그의 신앙은 여로보암보다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를 평가하며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왕상 15:34) 그는 여로보암의 죄를 반복했습니다.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를 없애지 않았고, 제사장 제도를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세우신 이유를 잊고, 자신이 세운 체제를 지키기에 급급했습니다. 바아사는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남유다 아사의 시대에 맞서 싸웠고, 국경을 강화했습니다. 그는 라마 성읍을 세워 남유다의 북진을 막으려 했습니다(왕상 15:17).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적인 통치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왕국은 영적으로 완전히 어두웠습니다.


그의 왕위는 인간의 피로 세워졌고, 그의 통치는 불신앙 위에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왕조를 오래 두지 않으셨습니다. 바아사의 왕조는 그의 아들 엘라 대에서 끝났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후를 보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티끌 가운데서 들어 올려 이스라엘 위에 세웠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였으므로 내가 네 집을 쓸어버리리라.” (왕상 16:2–3) 바아사의 왕조는 여로보암의 왕조와 똑같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한 사람이었지만, 결국 같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바아사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쓰시며, 또 어떻게 버리시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했지만, 그 심판의 영성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바사의 비극은 여기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도구적으로’ 사용했지만, 그 말씀 앞에 ‘자기 자신’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남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 나를 변화시키는 거울이어야 합니다. 바아사는 하나님의 심판을 남에게 적용했고, 자신에게는 면제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멸망의 원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때로 다른 사람의 죄를 비판하면서, 정작 내 안의 우상은 그대로 두고 살아갑니다.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죄를 심판했지만,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습니다. 오늘 우리도 “다른 사람의 죄를 고발하면서 내 안의 죄를 합리화하는” 그러한 영적 모순 속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신앙은 형태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하나님께 향해 있느냐, 아니면 자기 자신을 향해 있느냐, 그 방향이 신앙의 생사(生死)를 결정합니다. 바아사는 신앙의 방향을 잃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 싸운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자신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행했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그가 멸망한 이유는 하나님을 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바아사 시대의 백성들은 여로보암 때부터 이어진 우상숭배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예배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편리함과 습관으로 굳어졌습니다. 예루살렘의 제사는 불편했고, 율법의 요구는 부담스러웠습니다. 그 대신 ‘쉽고 빠른 예배’가 자리 잡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것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합리화했습니다. 이것이 무서운 영적 타성입니다. 신앙이 죄와 공존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신앙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타락했고, 결국 하나님의 징계의 칼날이 임했습니다.


바아사의 생애를 통해 우리는 세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바아사는 하나님의 손에 사용되었지만, 그 뜻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결과’보다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통해서도 일을 이루시지만, 그 악인을 인정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 쓰임받았다”는 사실보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심판의 말씀은 남이 아니라 나에게 적용해야 한다.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집을 심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여로보암의 길을 걷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나를 향한 말씀’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징계하시는 모습을 볼 때, 그것은 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향한 경고의 예화입니다.

신앙은 권력보다 회개를 택하는 것이다.
바아사는 왕위에 올랐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자기 힘으로 지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은 하나님께서 지키십니다. 회개하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믿음의 모양이 있어도, 마음속의 회개가 없다면 그 믿음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바아사의 이야기는 **“심판으로 세워지고 심판으로 무너진 왕”**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쓰임받았지만,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너는 바아사의 길로 행하지 말라.” 신앙은 남의 죄를 끊는 칼이 아니라, 나의 교만을 쪼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낮아지는 사람이 진정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바사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용감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그러나 그의 용기는 신앙의 용기가 아니라, 인간의 야심이었습니다.


진정한 용기는 하나님의 뜻 앞에서 무릎 꿇는 용기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세우시고, 그런 사람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이루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바아사의 유혹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도구로 삼으려는 마음, 남의 죄는 심판하면서 내 죄에는 관대한 태도, 이것이 바아사의 신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바아사의 길로 행하지 말고, 다윗의 길로 행하라.” 다윗은 죄인이었지만 회개했습니다. 바아사는 심판자였지만 교만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을 세우시고, 교만한 왕을 무너뜨리십니다.


바아사는 하나님께 쓰임받았지만 하나님께 버림받은 왕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하나님께 쓰임받기만을 원하느냐, 아니면 하나님과 함께 걷기를 원하느냐?” 하나님은 순종의 사람, 회개의 사람, 그리고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바사의 길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십시오. 그 길만이 멸망이 아닌 생명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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