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온유와.....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22-23)
온유라는 단어 'meekness'를 더 싶게 풀어서 쓴다면 온순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이 시대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사람은 보다 적극적이고, 성공 지향적이며, 강력한 지도력과 능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교회 지도자의 자질을 논할 때에도 이러한 세상의 기준은 동일하게 적용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온유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형제들아 만일 어떤 사람이 잘못에 빠지거든 영적인 너희는 온유한 영으로 그러한 자를 회복시키고 네 자신도 살펴보아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라(갈라디아서6:1)
우리는 바울의 권면을 통하여 성도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온유한 영으로 회복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가르치는 자가 온유한 영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지도자의 권위를 운운하며, 성도들을 강제로 끌고 가는 것이 성경적인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성경은 성도들에 대하여 온순한 자세로 인도하며, 또한 자신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지도자는 언제나 온유함으로 성도들을 대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모든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접붙임을 받은 말씀 곧 능히 너희 혼을 구원할 수 있는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야고보서1:21)
온유함은 결코 지도자들에게만 요구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말씀을 받는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되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성도가 말씀을 받을 때,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듣고 있다면 그는 반드시 나쁜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를 짐승과 비교할 때 양으로 표현합니다. 만일 양이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다른 생각을 가지고 가게 된다면 그는 곧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양이 온순하다는 것은 오직 목자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에게 매일 주어지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적절하고 지혜롭게 적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한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판단하며, 다투기를 즐겨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풍성한 생애를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온유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5:5)
주님은 온유한 자들에게는 땅을 상속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온유한 자들이 세상에서 그리 넉넉하지 않은 삶을 사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아시고, 하늘에서 보상해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온순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물질적으로 넉넉한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언제나 손해를 입고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은 온유한 자에게는 반드시 이 땅에서 누리지 못하는 부귀와 영화를 약속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부디 우리 안에 온유한 품성을 유지하면서 이 시대를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