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스라엘의 왕(1) 여로보암

조회 수 677 추천 수 0 2025.11.01 14:49:44


본문: 열왕기상 122533, 133334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에 찾아온 거대한 분열의 바람은 하나님 나라의 영적 기초를 흔드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왕위가 있었지만, 그 약속은 불순종 속에서 시험을 맞이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로운 통치 아래 이스라엘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마음이 이방 여인들과 그들의 신들에게로 향하면서 나라의 영적 토대가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솔로몬에게 경고하셨고, 그 경고의 결과가 바로 나라의 분열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은 이때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에브라임 지파, 즉 요셉의 후손으로서 북이스라엘의 중심에 있던 사람입니다. 솔로몬의 신하였고, 건축 감독관으로서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백성들 사이에서 신망이 있었고, 민심을 얻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신 이유는 단순히 그의 실력 때문이 아니라, 남유다와는 별도로 북쪽 열 지파를 맡아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선지자 아히야는 여로보암에게 새 옷을 찢어 열 조각을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손에서 나라의 열 지파를 떼어 네게 주신다는 증거이다”(왕상 11:31). 하나님은 여로보암에게 분명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네가 나의 명령을 지키고 다윗이 행한 것처럼 내 길로 행하면, 내가 너와 함께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라”(왕상 11:38).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약속과 동일한 축복이었습니다. , 여로보암은 다윗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왕이 될 기회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가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음을 증언합니다. 여로보암은 분명 하나님의 뜻으로 왕이 되었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계산과 정치적 불안을 신앙보다 앞세웠습니다. 이것이 그의 생애를 비극으로 이끌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시대적 환경을 살펴보면, 겉으로는 번영했지만 내면은 깊은 균열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통치 말기, 많은 세금과 강제노역으로 백성들의 불만이 쌓여 있었습니다. 특히 북쪽 지파들은 예루살렘 중심의 남쪽 통치에 불평이 많았습니다. 르호보암이 즉위했을 때, 그들은 세금을 완화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노인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젊은 신하들의 오만한 조언을 따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했으나 나는 전갈로 징계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북쪽 지파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나라가 남유다(유다, 베냐민 지파 중심)와 북이스라엘(나머지 열 지파)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분열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신앙의 분열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남유다로부터 떨어져 나갔습니다. 문제는 예루살렘이 하나님께서 친히 이름을 두신 성전이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절기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제사해야 했습니다. 여로보암은 이것이 자신의 정치적 불안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제사를 드리면, 그들의 마음이 다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왕상 12:27).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정치적 계산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그는 벧엘과 단 두 곳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이는 출애굽기 32장에서 아론이 금송아지를 세웠을 때 한 말과 동일한 문장입니다. 여로보암은 종교적 위장을 통해 백성들에게 편리함을 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버리고 새로운 신앙 체계를 만든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종교 개혁은 철저히 인간 중심이었습니다. 그는 제사장직을 레위인이 아닌 일반 백성에게 열어주었고, 예루살렘의 절기를 자기 임의대로 바꿨습니다. 제칠월에 드려야 할 절기를 제팔월로 바꾸어 자신이 만든 제단에서 제사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절기 변경이 아니라, 하나님 주권의 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인간이 편의에 따라 고친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처음에는 그것을 편하게 여겼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진리와 거짓의 경계가 무너졌습니다. 여로보암의 길, 하나님을 믿지만 자기 방식으로 믿는 길이 이스라엘의 새로운 종교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후 여러 왕들을 평가할 때마다 그가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였다고 기록합니다. 그것은 우상숭배의 시작, 불신앙의 전통, 인간 중심 신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여로보암의 내면으로 들어가 봐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솔로몬도 그를 두려워해 죽이려 했을 정도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자신을 세우셨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사람들 위에 있다는 사실에 집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라를 주셨다는 믿음보다, 자신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그 두려움이 불신앙을 낳았습니다. 신앙은 언제나 두려움과 믿음 사이에서 시험받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고, 두려움은 그 약속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붙잡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자기 방법의 신앙으로 빠져든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죄는 단지 우상을 만든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자기 방식으로 섬긴 죄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너희를 인도한 여호와다라고 말했습니다. , 이름은 하나님이지만 내용은 다른 신이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가장 무서운 왜곡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 하나님을 자신에게 맞추려 합니다. 여로보암의 길은 바로 그런 신앙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 여러 번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벧엘의 제단에서 한 하나님의 사람이 그를 향해 예언했습니다.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이 나올 것이니, 그가 이 제단 위에서 제사장들의 뼈를 불사르리라”(왕상 13:2). 여로보암은 그 예언에 분노하여 손을 들어 선지자를 잡으려 했지만, 그 즉시 그의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놀라서 선지자에게 네 하나님께 구하여 내 손을 고쳐달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손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보다 자신의 위신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처럼 여로보암은 여러 번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고집했습니다. 결국 그의 집안은 예언대로 끊어졌습니다. 그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었을 때, 그는 아내를 변장시켜 실로의 선지자 아히야를 찾아보냈습니다. 그러나 이미 늙고 눈이 어두운 아히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가운데서 나를 버렸으므로 네 집은 멸망할 것이다.” 그 말대로 여로보암의 아들은 죽고, 그의 왕조는 2대 만에 끝이 났습니다.

 

여로보암의 생애는 시작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끝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버림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는 백성을 위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위했습니다. 그는 종교를 정치의 도구로 만들었고, 신앙을 권력의 장식품으로 전락시켰습니다. 결국 그는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서 하나님을 버린 전통을 만들었고, 그 전통은 북이스라엘의 19명의 왕을 모두 타락시키는 근원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반복적으로 말합니다. “그가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였다.” 여로보암의 이름은 단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불신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의 길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얼마든지 여로보암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형편과 계산을 앞세울 때, 우리는 이미 그의 길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방식으로 믿은 사람입니다. 신앙의 가장 큰 위기는 무신론이 아니라, 하나님을 내 생각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분의 말씀을 조정하고, 순종보다 내 이익을 우선할 때 우리는 여로보암의 제단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개의 길을 여전히 열어두셨습니다. 여로보암의 손을 고쳐주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돌아오라. 네가 내 길로 행하면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하나님은 정치적 안정보다, 성공보다, 인간의 계획보다 순종을 원하십니다.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크고 강한 왕국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한 사람입니다.

 

이 설교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으라. 그리고 그 약속 위에 서라.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기에 무너졌습니다. 반면 다윗은 자신의 실패 속에서도 약속을 붙잡았기에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내 말에 순종하면, 내가 너를 세우리라.”

 

우리가 서 있는 시대도 여로보암의 시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편리한 신앙을 원합니다. 진리보다 유익을, 순종보다 감정을 앞세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편리한 예배보다 거룩한 순종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복하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여로보암의 금송아지를 찾아내고, 그것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것은 돈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고, 사람의 인정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을 신앙의 중심에 두는 순간, 우리는 이미 여로보암의 길 위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로보암처럼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네가 내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이 약속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신앙의 성공은 환경이 아니라 믿음의 방향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방향을 잃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세우신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세우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만이 우리의 제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로보암의 길이 아닌, 다윗의 길,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여로보암은 자기 제단 위에서 예배했지만,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춤추며 예배했습니다. 여로보암은 제사를 드렸지만, 다윗은 하나님께 마음을 드렸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마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여, 내 안의 여로보암의 금송아지를 무너뜨리소서. 내 안의 두려움, 내 방식, 내 욕망을 제단 위에 올려드리오니, 주의 말씀대로 다시 세워주소서.”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여로보암이 무너진 자리에, 순종의 제단이 세워질 때, 하나님께서 다시 그 나라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길을 따르지 말라.’ 이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이자, 동시에 회복의 초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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