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애굽기 20장 13절
“살인하지 말라”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십계명의 여섯 번째 말씀, “살인하지 말라”는 이 짧은 한 구절, 명령은 인류 문명 전체를 지탱하는 도덕적 기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명을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셨기 때문에 함부로 다룰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9장 6절은 말합니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사람에게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즉,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단순히 인간의 생명을 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이 계명은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라는 명령이며, 모든 인생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신앙의 선언입니다.
‘살인하지 말라’의 의미
본문의 히브리어 원문은 “로 찌르츠아흐 (לֹא תִּרְצָח)”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 *“라차흐”*는 단순한 ‘죽이다(kill)’가 아니라, 부당하고 의도적인 살인, 즉 악의적 폭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계명은 전쟁이나 사형과 같은 국가적 정의 행위를 포함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개인적인 원한, 분노, 복수심, 미움으로 행하는 살인을 금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절대적 주권을 가지셨습니다. 욥기 1장 21절에서 욥은 고백합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인생의 생사화복은 인간의 손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따라서 생명을 침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죄입니다.
살인의 비극과 생명 존중의 교훈
가인과 아벨 (창세기 4장)
인류 최초의 살인은 가인의 손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자, 가인은 분노와 질투에 사로잡혀 동생을 들로 불러내어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물으실 때,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의 타락이 얼마나 생명 경시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우의 피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생명을 죽이는 순간, 그 피가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다윗과 우리아 (사무엘하 11장)
다윗은 밧세바를 범한 후, 자신의 죄를 숨기기 위해 충직한 군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을 책망하셨습니다. “너는 칼로 우리아를 죽였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살인은 단지 피를 흘리는 죄가 아니라, 탐욕과 위선, 불의의 산물입니다. 다윗은 회개하며 시편 51편에서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요셉의 형제들 (창세기 37장)
요셉의 형제들은 시기심으로 그를 죽이려 했고, 결국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요셉은 나중에 그들을 용서하며 고백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나이다.” (창 50:20) 하나님은 생명을 멸하는 인간의 악함 속에서도 생명을 살리는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살인 금지’의 근본 정신
하나님은 생명의 창조주이시다.
창세기 2장 7절에서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따라서 생명은 인간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은 그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청지기입니다.
살인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21-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리라.” 즉, 단순히 피를 흘리는 행위만이 아니라, 미움과 분노, 멸시의 마음도 살인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리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다.
요한일서 3장 15절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살인을 금지하는 계명은 단지 부정적인 명령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보호하라는 적극적인 명령입니다.
오늘날의 ‘살인’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가 직접 칼을 들고 사람을 죽이지는 않더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현대적 살인”이 존재합니다.
말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
야고보서 3장 8-10절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비방, 중상, 거짓말, 모욕 — 이런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과 인격을 죽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생사화복이 혀의 권세에 있다”(잠언 18:21)고 말합니다.
무관심의 살인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맞은 자를 보고도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들의 무관심은 방관의 살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웃의 생명을 돌보라” 하십니다. 무관심은 사랑의 반대이며, 사랑의 부재는 곧 죽음입니다.
사회적 살인 – 불의와 착취
야고보서 5장 4절은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라고 말씀합니다. 경제적 불의, 억압, 탐욕, 권력의 남용은 수많은 생명을 죽입니다. 가난한 자를 외면하고, 불의를 방관하는 것도 살인과 같습니다.
자기 파괴적 살인 – 자살과 절망
자신의 생명도 하나님께 속해 있기에, 자살 역시 하나님의 주권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망 중에도 생명을 붙들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34편 18절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며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신다.”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는 분이십니다.
생명을 살리는 복음
예수 그리스도는 이 계명을 완성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사람을 죽이지 않으시고 자기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생명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심으로써 살인하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의 보혈은 살인자의 죄도 용서하셨습니다. 십자가 옆 강도에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43) 그리스도의 은혜는 죽음의 죄까지 덮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사람으로 부르심
제6계명은 단순히 “죽이지 말라”는 소극적인 명령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자가 되라는 적극적인 부르심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화해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화목하라.” 하나님은 제사보다 화해와 용서를 통해 생명을 살리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결단합시다.
마음속의 미움과 분노를 내려놓겠습니다.
말로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사랑과 용서로 생명을 살리겠습니다.
불의와 폭력 대신 평화를 이루는 도구로 살겠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생명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