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부드러움과.....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22-23)
이 부드러움은 '자비' '친절'이라는 말로 대신되어지고 있는 말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 성령을 통한 열매라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이와 같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드러움에 관하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가 가지고 싶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 문제를 운운하면서 자신이 없어 합니다. 더욱이 요즘과 같이 거칠고 당당한 사람들을 우상화하는 시대를 사는 자들이라면 이 부드러움은 사람들에게 사치스러운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통해 부드러움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부드러움에 대한 모습을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서로 친절히 대하며 상냥한 마음을 품으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하라(에베소서4:32)
이 부드러움은 결코 스스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그 대상이 있어야 하고 그들에 대하여 크게 세 가지의 마음을 가지고 대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친절히 대하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상냥한 마음을 품는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품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세상 사람들조차도 갖고 싶은 품성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그들이 각종 교육과 계몽운동을 통해서 이러한 일들을 하고자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통하여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때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더욱 성숙해지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교회 안에서 부드럽지 못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는 성도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판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말 그대로 부드러움은 열매입니다. 열매가 언제나 풍성하게 잘 열릴 수만은 없습니다. 묘목이 너무 어려서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때로는 병이 들어서 떨어지거나 벌레를 먹는 경우가 있듯이 그들의 믿음의 상태에 따라서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맺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비록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정상적으로 건실하게 자란 나무는 풍성하게 열매를 맺듯이 성령 안에서 사는 성도는 부드러움을 통하여 친절하고 상냥하며, 모든 일에 대하여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아직도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경계하고, 마음을 닫아 놓은 채 미워하는 마음까지 가지고 있는 상태라면 과연 성령 안에서 살고 있는지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확언하건대 그는 틀림없이 성령 안에서 살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람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은 반드시 덕스러워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부드러움을 통해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부디 성령 안에서 아름다운 생활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