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9편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거룩한 왕이심을 선포하는 찬양시로, 시편 93편에서 100편 사이에 위치한 이른바 ‘여호와의 왕권 시편’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편 99편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는 신앙의 고백으로 시작하여, 그분의 통치가 얼마나 거룩하고 의로운가를 노래합니다. 이 시는 단순히 예배의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경외하는 신앙의 자세를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함께 묵상하기 원합니다.
시인은 먼저 이렇게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1절) 여기서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는 선언은 이 시 전체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왕이십니다. 그분의 통치 아래 모든 민족이 있으며, 그분의 권세 앞에 모든 피조물이 떨게 됩니다.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다’는 표현은 성막의 지성소를 떠올리게 합니다. 언약궤 위에 놓인 두 그룹 사이에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났고, 거기서 하나님은 백성과 만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통치가 단지 하늘 위의 추상적인 권세가 아니라, 실제적인 임재의 통치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민이 떨 것이요.” 하나님 앞에서의 떨림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그분의 사랑 앞에서 감사하지만, 동시에 그분의 거룩함 앞에서 두려움으로 무릎을 꿇습니다. 신앙은 이 두 가지 — 사랑과 경외 — 사이의 균형 속에 자라납니다.
시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 위대하시고 그는 모든 민족 위에 높으시도다.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2–3절) 하나님은 시온, 즉 예루살렘에서 위대하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구원의 능력을 보이시며,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신 왕으로 높임을 받으셨습니다. 시인은 그 하나님의 이름을 “크고 두려운 이름”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단지 위로와 평안만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 앞에 설 때마다 두려움으로 떨게 하시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너무 쉽게 말하고, 너무 가볍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하나님의 거룩은 그분이 인간과 구별되신 절대적인 순결과 완전함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며, 거짓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성품은 변함이 없고, 그분의 통치는 완전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겸손과 경외의 자세로 서야 합니다.
시인은 이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미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 중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4절) 하나님은 단지 권세로 통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의 통치는 정의와 공의에 기초한 통치입니다. 그분은 약한 자를 억압하지 않으시며, 진리를 굳게 세우십니다. 이스라엘의 왕 다윗도 이 사실을 알았기에, 자신의 나라를 세울 때마다 하나님의 정의를 본받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세상의 통치와 다릅니다. 세상의 권력은 종종 불의와 타협하지만, 하나님은 불의를 미워하시고 의로운 자를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의 기준을 넘어섭니다. 그분은 숨겨진 죄악을 드러내시며, 고통받는 자의 억울함을 들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다는 것은 그분의 공의를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배 중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우리의 삶 속에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정직과 진실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모습입니다.
시인은 다시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5절) ‘발등상’은 언약궤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즉, 시인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엎드려 경배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을 높인다는 것은 그분을 우리의 중심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분을 높이지 않으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자신을 높이게 됩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예배자는 자기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무릎 꿇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예배를 드리지만, 그 예배가 단지 의식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고, 나를 낮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왕이심을 인정하는 자리는 언제나 경배와 순종의 자리입니다. 시인은 이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들을 언급합니다.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그가 그들에게 응답하셨도다.”(6절) 모세와 아론, 그리고 사무엘은 모두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서 백성을 대신해 중보했던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백성의 죄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분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오늘도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응답하십니다. 시인은 덧붙입니다. “주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그들은 그가 그들에게 주신 증거와 법도를 지켰도다.”(7절) 하나님은 말씀으로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구름 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음성은 과거에만 들렸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집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때, 그 말씀은 우리의 길이 되고 빛이 됩니다. 시편 99편은 마지막에 다시 하나님을 높이며 마무리합니다.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의 성산에서 경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도다.”(9절) 여기서 ‘성산’은 시온산, 즉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곳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높인다는 것은 단지 입술의 찬양이 아니라,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고백입니다. 그분의 거룩하심을 아는 사람은 자신도 거룩함을 추구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서 말씀하듯,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화려한 예배가 아니라, 거룩한 삶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거룩함은 우리의 언어에서, 관계에서, 일상의 선택 속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곧 참된 예배입니다.
시편 99편은 세 번 반복하여 선포합니다 — “그는 거룩하시도다.” 이것이 이 시편의 결론이며, 우리의 신앙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왕이십니다. 그분의 통치는 정의롭고, 그분의 이름은 두렵고 거룩합니다. 그 앞에 무릎 꿇는 자만이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마다, 하늘의 거룩이 이 땅 가운데 임하는 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