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4편은 억울하게 눌린 자, 악인의 손에 고통받는 의인들의 간구와 그 가운데서 여전히 공의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고대 이스라엘의 현실 속에서 울려 퍼졌던 절규이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시인은 먼저 하나님을 원수 갚으시는 하나님으로 부릅니다. “여호와여, 원수 갚으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소서”(1절)라고 외칩니다. 이는 단순히 복수심이 아니라, 불의가 판치는 세상 속에서 공의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개입하시고 바로잡아 주시기를 바라는 간구입니다. 당시에도 악인들은 교만했습니다. 그들은 약한 자들을 짓밟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학대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지 못하신다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눈은 결코 감기지 않았으며, 그분의 공의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시인은 세상의 지혜를 자랑하는 자들을 책망합니다. “너희 무지한 자들아 깨달으라. 백성 중에 어리석은 자들아 언제나 지혜로울까”(8절). 악인은 자기 꾀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임을 성경은 끊임없이 말합니다. 눈을 만드신 하나님이 보지 못하시겠습니까? 귀를 지으신 하나님이 듣지 못하시겠습니까? 세상은 하나님을 무시하며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지만, 모든 생명과 역사 위에 서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교만은 한낱 헛된 바람일 뿐입니다.
시편 94편은 또한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의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14절). 비록 지금은 불의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고, 악인이 형통하는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세워지고, 의인은 그 공의 안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시인은 자기의 개인적인 경험도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가 나를 붙드실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 발이 미끄러진다 하였더니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로가 내 영혼을 즐겁게 하셨나이다”(18-19절). 이 고백은 오늘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자주 흔들리고, 우리의 발은 미끄러지려 하지만, 주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붙드십니다. 마음속에 근심과 염려가 몰려올 때, 주님의 위로가 우리의 영혼을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리고 시편 94편은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우리의 산성이라고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요새가 되시며 나의 하나님이 내 피할 반석이 되시리로다”(22절). 세상 권세와 악인의 힘은 언젠가 무너지고 사라지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의 산성, 요새,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성도는 세상의 힘이 아니라, 이 산성과 같은 하나님께 피할 때 안전을 얻습니다.
시편 94편은 오늘 우리에게 몇 가지 분명한 메시지를 줍니다. 첫째, 하나님은 결코 불의를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지금은 악인이 잘 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둘째,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는 결코 버려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위로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셋째, 우리의 참된 안전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람의 힘, 재물, 세상 권력은 잠시일 뿐이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산성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불의한 세상 속에서 분노하며 낙심하기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어려움 중에도 주님께서 나를 붙드시고 위로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을 나의 요새요 산성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불의와 고난과 근심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시편 94편의 이 고백을 붙드시길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요새시요, 나의 피할 반석이시다.” 이 믿음으로 오늘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와 위로 안에 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