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2편은 특별히 “안식일의 찬송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식일, 곧 하나님 앞에서 쉼을 누리며 예배하는 날에 불리던 노래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는 단순한 개인의 기도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그분의 은혜를 노래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노래입니다.
시인은 먼저 이렇게 고백합니다. “지존하신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는 것이 좋음이요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1–2절). 시편 기자는 인생의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고 찬양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며 기쁨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모으고, 세상적 성공을 얻을 때 기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기쁨,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기쁨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의 삶 전체를 채워주는 기쁨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크신 일을 묵상하며 감격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을 인하여 내가 높이 부르리이다”(4절). 믿음의 사람은 환경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합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그 사실이 우리의 찬양과 기쁨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악인들이 있습니다. 시인은 그들의 형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어리석은 자마다 이를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도다.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나며 악을 행하는 자들이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6–7절). 풀은 비가 내리면 금세 푸르게 자라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금세 말라버립니다. 악인의 형통도 이와 같습니다. 잠시 화려해 보이고 잘되는 것 같으나, 결국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악인의 번영에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의 결말은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의인의 길은 다릅니다. 시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12절). 종려나무는 사막에서도 뿌리를 깊이 내려 꿋꿋하게 자라 열매를 맺습니다. 백향목은 웅장하고 곧게 자라며 수백 년을 버티는 강한 나무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뿌리 내린 의인의 모습입니다. 세상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날마다 번성하며 강건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14절 말씀입니다. “그들은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하나님 안에 있는 성도는 나이가 들어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깊은 믿음과 지혜를 간직하며, 다음 세대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깁니다. 세상은 젊음과 힘을 중시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열매 맺는 인생이 복된 인생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며 시를 마무리합니다.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선포하리로다. 그는 나의 반석이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15절). 우리의 삶의 결론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시고, 하나님은 반석이시며, 하나님은 불의가 없으신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때에도 하나님은 반석처럼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공의로우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두 가지를 마음에 새기기를 원합니다.
첫째, 악인의 형통에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의인의 길을 걸으며 종려나무와 백향목처럼 뿌리 깊은 믿음을 가지고,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삶의 끝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그분의 정직하심을 증거하는 자로 서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라는 말씀을 붙잡으며, 승리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