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니.......살인과.......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19-21)
이미 살인은 성경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아담과 이브의 죄가 가져온 결과로 그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 사이에서 살인이 일어났던 것을 시작으로 인류의 역사 가운데는 끊임없이 살인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살인이 한 세대에도 멈춘 적이 없으며,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고질적인 것입니다. 전 세대에 걸쳐서 이 살인을 없애보자고 수없이 계몽운동을 펼쳐보기도 했지만 오히려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이 살인에 관한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이 살인에 관한 것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이 살인에 대한 개념을 다르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인이 육신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성경은 보다 기본적인 단계에서 살인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미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요한일서3:15)
과연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미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한 사람도 자신이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았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 평생을 가지고 가야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우리 안에 이 살인에 해당되는 미움을 가지고 있다면 그에게는 아무런 상속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미움은 용서하지 못하는 것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용서를 한다면 미움이라는 감정이 그 안에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욱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밝히 가르쳐 주는 진리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 누구와 다툴 일이 있거든 서로 참고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덧 입으라 사랑은 완전하게 하는 띠니라(골로새서3:13,14)
우리가 용서를 한다고 미움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용서 위에 사랑을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서 미움을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이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미움은 또 다시 그 실체를 드러내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또 다시 당황스럽게 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아무런 상속도 없게 만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면서 미워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주님의 용서하심을 기억하고 누군가를 용서하며, 그 위에 사랑을 덧입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의 상속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부디 자신을 잘 지켜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