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면류관

조회 수 738 추천 수 0 2025.09.08 10:53:26

가시 면류관: 고통 속의 영광

 

본문: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마태복음 27273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요한복음 1913)

 

우리는 종종 면류관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왕의 영광을 연상합니다. 금으로 장식된 면류관, 보석이 박힌 왕관은 힘과 권세, 명예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묵상할 면류관은 그러한 것과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지닙니다. 그것은 가시로 엮은 면류관입니다. 상처와 피를 의미하고, 수치와 고통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쓰신 가시 면류관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신 의미를 깊이 묵상하며, 그 속에 담긴 세 가지 진리를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가시 면류관은 인류의 죄를 상징합니다

 

성경에서 가시는 단순한 식물의 일부가 아닙니다. 창세기 31718절에서 하나님은 아담의 범죄에 대한 결과로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시는 인간의 죄와 저주의 상징입니다. 이 땅에 죄가 들어오고 그 결과로 고통과 죽음이 들어온 것이며, 가시는 그 사실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셨다는 것은 단지 조롱받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인류의 죄와 저주를 머리에 이고 계셨습니다. 죄의 저주를 대신 받아 머리에 깊은 상처를 입으시고,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머리는 생각의 중심이며, 영광의 자리입니다. 예수께서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셨다는 것은 우리의 죄와 사망의 결과를 그분의 영광의 자리에서 담당하셨다는 선언입니다.

 

그리스도의 이 행동은 구약의 희생제사와도 연결됩니다. 제사장이 속죄제의 짐승 머리에 손을 얹는 것은 죄를 전가한다는 상징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머리에 이고 가시 면류관을 쓰셨다는 사실은 그분이 대제사장으로서, 동시에 희생 제물로서 우리 죄를 완전히 감당하셨다는 복음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2. 가시 면류관은 세상의 조롱과 폭력에 대한 주님의 침묵입니다

 

마태복음 27장에 보면,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희롱하며 유대인의 왕이라 부릅니다. 붉은 옷을 입히고 갈대로 때리고, 침을 뱉고 무릎 꿇어 조롱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웁니다. 이는 단순히 고통을 주려는 행위가 아니라, 왕 되심에 대한 조롱입니다.

 

세상은 참된 왕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권력을 칼로 여겼고, 주님께서 보여주신 섬김과 희생의 왕권은 우습게 여겼습니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가시 면류관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에 대항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 말씀 없이 그 수치를 감당하셨습니다. 이는 이사야 53장에 예언된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셨다는 말씀의 성취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침묵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은 능히 자신을 변호할 수 있었고, 수많은 천군을 부를 수도 있었지만, 대신 침묵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아야 할 조롱, 우리가 받아야 할 비난과 정죄를 그분이 대신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침묵은 단순한 인내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요, 구원의 침묵입니다. 이 침묵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어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 가시 면류관은 영원한 승리의 시작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가시 면류관은 패배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승리의 시작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하늘의 보좌 앞에 계신 어린 양은 죽임을 당한 자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어린 양은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입니다. 그분은 더 이상 가시 면류관을 쓰신 채 조롱받는 자가 아니라, 하늘의 금 면류관을 쓰시고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셨습니다.

 

이처럼 가시는 일시적이지만, 영광은 영원합니다. 고난은 잠시지만, 부활은 끝이 없습니다. 가시 면류관은 금 면류관으로 바뀌었고, 십자가는 부활의 영광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 승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도 이 땅을 살며 때로는 가시 면류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억울함과 조롱, 실패와 상처의 시간을 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주님도 그 길을 걸으셨고, 결국 승리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그 가시는 영광의 보석으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면류관을 쓰고 있습니까? 혹시 세상의 영광을 좇아 금면류관을 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오늘도 조용히 믿음을 지키며 가시 면류관을 쓰고 계십니까?

 

우리는 세상의 성공과 인정이 면류관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면류관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데서 시작되며, 그분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데에 이릅니다.

 

우리도 때로는 억울한 일,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분의 가시 면류관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그 고난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의 가치를 따르지 않기로 결단합시다. 가시 면류관을 쓴 주님을 따라, 그 고난과 함께 영광의 자리에 나아가기를 소망합시다. 우리의 영혼에도 어느 날 주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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