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4편 성소가 무너졌을 때

조회 수 540 추천 수 0 2025.09.04 10:43:53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셨나이까주의 원수가 주의 회중 가운데에서 떠들며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낮은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니주를 대적한 자의 떠드는 소리를 잊지 마옵소서”(74:1, 4, 13, 16, 23)

 

시편 74편은 성소가 짓밟히고, 거룩이 모욕당하며, 하나님의 백성이 길을 잃은 시대의 통곡입니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로 시작하는 이 탄식은 단지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믿음의 자리에서 던지는 질문입니다. 믿음은 때때로 질문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그 현실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주의 원수가 주의 회중 가운데에서 떠들며”(4). 나라가 무너졌고, 성전이 불탔습니다. 거룩한 자리에서 우상과 조롱이 춤을 춥니다. 그는 무너지지 않으려 했지만, 눈앞의 현실이 작지 않습니다. “우리를 영원히 버리셨나이까?”정말 버리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편의 놀라움은 버리셨다고 선언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 들고 가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버림받음처럼 느껴질 때 버림받음의 감정을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 그 자리에서 언약을 상기하는 것,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행하심으로 시야를 바꾸는 것.

 

시편 74편의 큰 흐름은 이렇습니다.

첫째, 현실의 철저한 묘사(111). 성소가 파괴되었고(7), 표적들이 사라졌고(9), 선지자도 없고(9),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듯합니다(1011).

둘째, 기억의 회복(1217).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12)과거의 구원, 바다를 가르시고(13), 리워야단의 머리를 깨뜨리시고(14), 낮과 밤을 만드시고(16), 계절을 제정하신(17) 창조주를 다시 기억합니다.

셋째, 언약에 호소하는 간구(1823). “언약을 돌아보소서”(20). “주의 비둘기의 생명을 맹수에게 주지 마시며”(19). “주의 대적의 떠드는 소리를 잊지 마옵소서”(23). 눈앞에는 폐허뿐이지만, 그의 입술에는 언약의 언어가 살아납니다.

 

먼저, 시인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는 성소 안에서 벌어진 모욕을 세세히 묘사합니다. 그들이 도끼와 도끼로 그 새긴 것을 찍어 부수고”(6), “성소에 불을 지르고”(7). 성전 파괴는 단지 건물의 붕괴가 아니라 신앙의 상징이 부서지는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에도 성소가 무너진 장면들이 있습니다. 교회라는 건물은 서 있어도 거룩의 감각이 무너지고, 예배의 중심이 흐려지고, 돈과 성취가 하나님의 자리를 탐합니다. 사회 곳곳에서 신앙은 조롱받고, 정의는 늘 미뤄집니다. 우리 개인의 성소마음의 성전역시 상처와 두려움, 죄책감과 냉소로 허물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묻습니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이 질문은 불경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표지입니다. 관계가 없었다면 묻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74편은 질문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시인은 기억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12). 왜 과거를 소환합니까? 기억은 믿음을 되살립니다. 과거의 구원은 현재의 해석을 바꾸고, 미래의 소망을 낳습니다. 바다를 나누신 하나님(13), 혼돈의 괴물의 머리를 깨뜨리신 하나님(14),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을 정하신 하나님(1617). 이것은 단지 옛이야기가 아닙니다. 창조와 출애굽혼돈을 질서로, 종살이를 자유로 바꾸는 하나님의 패턴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낮은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니”(16). 밤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밤을 견딜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밤도 그분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밤은 의미 없는 어둠이 아니라 구원의 서막일 수 있습니다.

 

현실의 묘사에서 기억의 회복으로 넘어간 시인은 이제 언약을 붙듭니다. 언약을 돌아보소서”(20). 여기서 믿음은 중요한 전환을 합니다. 내 처지를 보소서에서 주의 이름과 언약을 위해 행하소서로 기도의 축이 이동합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맺으신 언약, 당신의 이름의 영광, 당신의 백성에 대한 약속그것이 그의 간구의 근거가 됩니다. 우리의 기도도 그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감정의 홍수를 하나님께 올려 드린 뒤에는,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을 기도의 근거로 삼아야 합니다. 주의 성실과 인자, 공의와 전능, 창조와 구속의 역사가 기도의 문장을 새롭게 빚어야 합니다.

 

이 시편은 또 하나의 귀한 진리를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다. 9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표적은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다시 없으니 표적도 사라지고, 해석해 줄 선지자도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쉽게 결론 내립니다. “하나님은 없다.” 그러나 시편은 그 빈자리에 기억과 언약을 채웁니다. 표적이 없어도 약속은 살아 있고, 선지자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도 성소에서 읽힌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성도는 더 큰 귀로 듣고 더 깊은 기억으로 붙듭니다. 침묵은 성숙으로의 초대일 수 있습니다.

 

이제 이 말씀을 우리의 자리로 가져옵시다. 성소가 무너졌을 때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첫째, 탄식의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로 예배를 시작할 용기. 인간의 고통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가져오는 예배. 눈물을 금지하지 않는 공동체. 둘째, 기억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와 가정, 개인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록하고 낭독하십시오. 구원의 이야기, 작은 간증, 눈물의 응답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십시오. 기억은 믿음을 낳고, 믿음은 견딤을 낳습니다. 셋째, 언약의 언어를 배우십시오. 기도의 문장을 감정의 서술에서 언약의 호소로 바꾸십시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에서 멈추지 말고 주여, 주의 이름과 언약을 위하여 행하소서까지 가십시오. 넷째, 창조의 신학을 붙드십시오. 낮과 밤, 계절을 지으신 하나님(1617)은 역사의 계절도 바꾸십니다. 추위는 길지만 영원하지 않습니다. 겨울 뒤에는 봄이 옵니다. 이것이 창조의 리듬이며, 구원의 리듬입니다.

 

시인은 마지막에 이렇게 외칩니다. 주를 대적한 자의 떠드는 소리를 잊지 마옵소서”(23). 떠드는 소리는 컸고, 하나님의 백성의 목소리는 작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작은 목소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작은 목소리겸손과 회개, 신실한 간구를 통해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역사는 언제나 큰 소리로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숨은 골방의 기도, 작은 순종, 보이지 않는 성실이 하나님의 시간을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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