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류관(2) 기쁨의 면류관

조회 수 53 추천 수 0 2025.06.28 09:18:42

기쁨의 면류관 – 영혼을 위한 사랑과 수고의 보상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절, 빌립보서 4장 1절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데살로니가전서 2:19)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빌립보서 4:1)


면류관은 성경에서 단순한 장식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왕의 통치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더 깊은 의미로 들어가 보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영적인 상급이며, 신실한 신앙생활의 열매이고, 하늘에 쌓이는 영광의 보상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고백하는 “기쁨의 면류관”은 단지 개인적인 만족이 아니라, 복음을 통해 하나님께 인도된 영혼들이 그의 자랑이며 상급임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너희는 나의 소망이며 기쁨이며 자랑의 면류관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서도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이 두 구절은 단순히 감정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 전도자의 삶 전체에서 무엇이 진정한 보상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영적 고백입니다.


바울은 수많은 도시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지만, 그의 자랑은 자신이 이룬 업적이나 명성이 아니라, 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그가 예수님 앞에 서는 날 내세울 수 있는 기쁨의 면류관이었습니다. 이 면류관은 금으로 만든 것도, 보석으로 장식된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가장 값지고 영광스러운 상급입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이 땅의 그 무엇보다도 귀하기 때문입니다.


기쁨의 면류관은 목회자나 전도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에게 주어질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할 때, 친구가 친구를 복음으로 인도할 때, 성도가 새신자를 품고 기도하며 제자로 세울 때—그 영혼 하나하나가 하늘에서 우리의 면류관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열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면류관이지만, 하늘의 책에는 분명히 기록되고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영원히 빛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쁨의 면류관을 얻기 위한 삶은 단지 감정적 기쁨의 순간이 아니라, 복음을 위한 수고와 헌신, 눈물과 기도, 그리고 끈질긴 사랑의 결과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2장에서 자신이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지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부터 맡은 바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너희 중에서 아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2:4, 6)


그는 단지 말씀만 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까지도 나누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너희를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하였노라.” (2:8) 이는 전도와 양육이 얼마나 깊은 사랑과 헌신을 요구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복음의 열매는 그냥 맺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뿌리고, 눈물로 기도하며, 인내로 거두는 결과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삶은 삶 전체가 메시지가 되는 삶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진실함과 일관성으로, 친절함과 희생으로 드러나는 복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됩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 복음은 우리의 말보다도 더 큰 권세를 지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또한 영혼을 위한 기도는 단지 형식이 아니라, 마음의 전투입니다. 바울은 “밤낮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보충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전서 3:10)고 말합니다. 바울은 설교만 한 것이 아니라, 기도로 그들의 믿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싸웠습니다. 우리가 인도한 자들이 그 믿음을 지키도록 중보하는 일은, 기쁨의 면류관이 결실을 맺기 위한 영적인 보호막입니다.


또한 바울은 “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기름 같이” 성도들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7) 이는 한 영혼을 향한 사도적 사랑과 인내의 표현입니다. 기쁨의 면류관은 단지 한 순간의 전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믿음 안에 뿌리내리기까지 지속적인 양육과 돌봄을 통해 이루어지는 결과입니다. 한 사람의 신앙이 서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 시간이 바로 우리의 수고요, 그 수고가 하나님의 상급이 됩니다.


왜 우리는 이 기쁨의 면류관을 구해야 합니까? 그것은 영원한 상급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명예는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래지고, 사람의 칭찬은 사라질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면류관은 영원합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다니엘서 12:3)


또한 그것은 주님의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세 가지 비유에서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 하나가 돌아올 때마다 하늘에서 잔치가 열리며, 천사들이 기뻐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위해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고 섬길 때, 하늘은 기뻐하고, 주님의 마음은 환히 웃습니다. 그 영혼이 주 앞에 서는 날,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수고했다, 네가 인도한 이가 바로 네 면류관이요, 나의 기쁨이니라.”


이제 우리는 거룩한 질문 앞에 섭니다. “당신의 면류관은 누구입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을 얼마나 소유했는가는 천국의 기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물으시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너는 누구를 데리고 왔느냐?”


 오늘부터라도 한 사람을 품고 기도합시다. 말로 복음을 전하고, 삶으로 복음을 보여줍시다. 끈질기게 사랑하고, 기도로 섬기고, 끝까지 인내합시다. 그리고 언젠가 주님 앞에 설 때, 그 한 사람이 당신의 기쁨의 면류관이 되어 당신 옆에 서 있을 것입니다. 그날, 주님은 기뻐하시고, 우리도 하늘의 영광 가운데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빌립보서 4:1)
기쁨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오늘도 주 안에서 흔들림 없이 서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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