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서신을 한 마디로 요약해서 설명한다면 "아들과 종"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 자신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더 이상 종으로서의 삶을 살지 말도록 강력하게 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갈라디아서가 말하고 있는 것은 아들과 종의 관계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표면적인 문제점은 그들은 다시 율법을 따라 믿음의 생활을 지속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바울은 그들이 다시 종이 되려고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아시거늘 어찌하여 너희가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원리로 돌아가 다시 그것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4:9)
바울 당시 갈라디아 교회의 상황은 오늘날의 상황과 흡사한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처음에 받은 은혜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셨음을 감사하며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모습이 많이 바뀌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덧 성경이 원하지도 않는 관습과 유럽적인 생활을 지속하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들과 사람들의 속성을 사탄은 교묘하게 이용하여 현혹시키고 있는 것이 이 시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거짓 복음들이 활기를 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들은 대부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구원이 은혜로만이 아닌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이러한 거짓 복음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것들을 지키고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짓 교리들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온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2:21)
우리가 갈라디아서를 묵상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율법으로 돌아가는 현상들을 막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돌아오는 일들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오늘날의 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쓴 이유는 그들을 단순히 책망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다시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 안으로 들어오게 함으로서 충만한 생활을 누리게 하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갈라디아서를 묵상하는 동안 오늘날 교회의 많은 문제들을 들춰낼 수 있겠지만 그들을 책망하거나 비판하려는 것보다는 오히려 복음 안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될 갈라디아서 묵상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더욱 온전해지고 결코 거짓 복음에 현혹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