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3장 1-5절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그 다음은 삭굴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어문은 하스나아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브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중수하였으며,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에 힘을 들이지 아니하였더라." (느헤미야 3:1-5)
느헤미야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이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3장은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우는 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맡은 구간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행정적 기록처럼 보이지만,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자들의 아름다운 수고와 그 반대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깊은 영적 교훈을 줍니다.
먼저 양문이 등장합니다. 양문은 예루살렘 북쪽 성곽에 위치한 문으로, 성전에서 제사드릴 양들이 드나들던 문이었습니다. 이 문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제물이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요한복음 5장 2절에는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베데스다 못이 양문 가까이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문은 단순한 문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7절에서 "내가 곧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의 문이 되셔서, 누구든지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양문을 재건한 자는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제사장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제사를 위해 쓰였던 문을 하나님의 종들이 가장 먼저 세운 것입니다. 이것은 예배의 회복,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성벽 재건의 가장 첫 번째 사명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다음으로 어문이 등장합니다. 어문은 예루살렘 성의 서북방에 위치한 문으로, 하스나아 자손들이 건축하였습니다. 이 문은 갈릴리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공급하던 경로였습니다. ‘어문’이라는 이름은 어물전, 즉 생선을 사고팔던 시장이 문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이처럼 성 안의 생명과 공급의 통로가 되는 문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생계와 일상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벽의 회복은 단지 성전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삶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재건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넬 망대에 대한 언급은 예레미야 31장 38절의 예언을 떠올리게 합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이 성이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모퉁이 문에 이르기까지 여호와를 위하여 다시 건축될 것이라.” 하나님의 예언은 반드시 성취되며, 성벽을 재건한 이들은 그 약속의 성취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느헤미야는 그 성벽을 재건한 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합니다. 여리고 사람들이 성벽을 건축하였고, 삭굴이 이끄는 사람들이 그다음을 이어 건축하였습니다. 또 므레못, 므술람, 사독, 드고아 사람들이 순서대로 참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하나되어 공동체를 이루어 일할 때 그들의 수고를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십니다. 히브리서 6장 1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느헤미야 3장은 바로 그 사실을 증언하고 있는 장입니다. 수많은 이름들이 무대 뒤에 사라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 이름을 성경 속에 새겨 두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이 일에 동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5절에서 드고아 사람들이 성벽을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에 힘을 들이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합니다. 드고아는 선지자 아모스의 고향입니다. 그 지역의 민중들은 헌신하였지만, 귀족들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힘과 자원이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 무관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2장 48절에서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드고아의 귀족들은 이 원리를 무시하였고, 그들의 이름은 부정적으로 남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는 이름도 없이 헌신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기억하십니다. 반대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외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헌신하는 자, 겸손히 순종하는 자를 통해 당신의 나라를 세워가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에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양문에서 어문까지, 예배에서 일상까지,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함께 성을 재건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각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입니까?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우는 자입니까, 아니면 드고아의 귀족들처럼 등 돌린 자입니까? 우리의 삶 속에서 무너진 예배, 공동체, 사랑, 책임, 헌신의 벽을 다시 세워야 할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곧 양의 문 되신 그분을 통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 앞에 우리 각자가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우리도 성을 다시 세우는 자가 됩시다. 그리고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의 기억 속에 빛나도록 주님께 온전히 드려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