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장 4-5절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본문은 느헤미야가 하나니의 보고를 들은 후 보여준 반응과 그가 드린 기도의 고백으로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참담한 현실을 전해 듣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울고,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왜 그렇게까지 슬퍼했을까요? 단순히 고국의 폐허를 들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백성들의 고통 때문이었을까요?
느헤미야는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전에 예루살렘을 완전히 무너뜨린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들에 의해 예루살렘이 어느 정도는 회복되어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느 2:3 참조). 그 기대와는 달리, 하나니가 전한 소식은 너무도 참혹하고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그렇게까지 처참한 형편에 놓여 있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책임의식을 갖고 있었던 느헤미야는 이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에 잠긴 것입니다. 비록 그는 바사의 궁전에서 안락하게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당하는 고난과 하나님의 성읍이 황폐한 현실 앞에서 위안을 얻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의 울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언약 백성으로서의 애통함이었습니다. 그는 민족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깊은 연대의식 속에서, 그 고통을 자신이 짊어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 연약한 지체와 공동체의 어려움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은 곧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도하는 연대의 마음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렇게 울며 슬퍼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의 반응은 매우 신앙적이고 모범적인 태도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권력의 위치를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언약의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예레미야 15장 2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이 백성의 손에서 건지며 너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느헤미야는 바로 그 약속을 믿고, 하나님 앞에 간구했던 것입니다.
그의 기도는 단기적인 반응이 아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기슬르 월, 즉 태양력으로 11월에서 12월부터 니산 월, 곧 3월~4월까지 약 4개월 동안 계속해서 기도합니다(느 2:1). 이것은 단순한 한 번의 기도가 아니라, 인내와 지속적인 믿음의 기도였으며, 하나님의 뜻을 조용히 살피며 주권을 의지하는 성숙한 신앙의 행위였습니다. 역대상 29장 11절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느헤미야의 기도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오는 표현은 “하늘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세상의 사람들과 우상들이 섬기던 땅의 신들과 구별되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뜻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이방 제국의 수도에서 살고 있던 느헤미야는 결코 이방 종교에 물들지 않고,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를 바르게 알고 섬겼던 것입니다. 느헤미야 9장 6절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만물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수많은 가치와 신념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의 우상들과 타협하지 말고, 성경이 계시하는 참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고, 그분만을 경외하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또한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라 부릅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의 표현이며,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엄과 권능 가운데 계시는 분이신지를 드러냅니다. 시편 99편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니 그는 거룩하시도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그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거룩하신 분이신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안에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본성을 붙잡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신명기 7장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을 모세를 통해 성문법으로 확인하셨고(출애굽기 19장), 가나안 땅에서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 점차 우상을 따르고 언약을 저버렸고, 결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대하 36:19-20; 예레미야 22:9). 그럼에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언약을 지켜오셨고, 남은 자들을 통해 다시 회복을 시작하셨습니다(왕하 25장).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분의 말씀을 신실하게 붙잡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그분의 뜻 안에서 반드시 일하십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오늘 이 말씀 앞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무너진 현실을 향해 얼마나 눈물로 기도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연대의식을 품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기를 사모하는 기도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지금도 그런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 기도와 믿음을 통해, 하나님은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 회복의 통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