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왕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관점 중 하나인 무천년설(Amillennialism) 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무천년설은 지상에 실제적인 천년왕국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이들은 요한계시록 20장에 기록된 천년 기간을 문자적으로 보지 않고, 상징적이고 영적인 의미로 해석합니다.
무천년설을 최초로 주장한 인물은 초기 기독교의 교부였던 오리겐(Origen) 입니다. 그는 천년의 기간이 바로 신약시대, 즉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모든 시기를 의미한다고 보았습니다. 오리겐은 성경의 많은 부분을 비유적, 알레고리적 해석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도 문자적 사건이라기보다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견해를 더욱 확고히 세운 인물이 바로 중세의 위대한 신학자 어거스틴(Augustine) 입니다. 어거스틴은 천년왕국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후부터 최후의 심판까지 이어지는 복음 시대 전체로 보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교회를 통해 세상을 영적으로 지배하는 것으로 해석하며, 천년왕국을 '교회 시대'에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설명했습니다.
무천년설에 따르면,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사단의 결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와 부활 사건을 통해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합니다. 즉, 사단은 현재 제한적으로 결박되어 있으며, 성도들은 이미 영적으로 구원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사단의 활동이 하나의 사건,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로 압축하여 반복적으로 강조된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자세히 읽어보면, 사단의 사역은 단계별로 구체적으로 전개됩니다. 사단이 하늘에서 땅으로 추방되고(12:10), 그리스도를 대적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며(13-17장), 결국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해 패배하고(19:11-16), 마지막으로 무저갱에 결박되는(20:1-3) 순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로 보아 무천년설이 주장하는 단일 사건 해석에는 분명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무천년설은 요한계시록 20장에 언급된 '첫째 부활'을 성도들의 육체적 부활이 아니라, 단순히 영적인 거듭남(중생)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첫째 부활' 이후에 '둘째 사망'이 존재함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으며, 이는 중생과는 다른 차원의 부활과 심판을 의미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점에서 무천년설은 성경의 본래적 의미를 왜곡할 위험이 있습니다.
무천년설은 종말에 가서 세상이 극도로 타락하고 사단의 세력이 다시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전천년설과 일부 의견을 같이 합니다. 그러나 천년왕국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있을 것이라는 전천년설과 달리, 무천년설은 천년의 기간을 현재 복음 시대와 동일시하는 점이 특징입니다.
오늘날에도 로마 카톨릭 교회와 많은 개신교 신학자들, 특히 개혁주의 신학자들 가운데 칼빈(John Calvin),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B.B. 워필드(B.B. Warfield), 버코프(Louis Berkhof) 등이 무천년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다양한 신학적 해석들을 분별력 있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해석이든지 하나님의 주권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분명한 소망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반드시 오셔서 모든 악을 심판하시고, 성도들과 함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시대에 있든지, 항상 깨어 기도하며 믿음으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참조, 마태복음 24:42-44).